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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청하고자 연락을 드립니다. 혹시 ‘<시사저널> 사태’를 아시는지요. 지난 6월 중순에 일이 있었다고 하니 벌써 넉달 째에 접어듭니다. 편집국장이 모르는 상태에서 인쇄소에서 삼성 그룹 관련 기사가 삭제되어 편집국이 몹시 황망했던 모양입니다. 사장은 사장대로, 편집인으로서 정당한 권리 행사였다고 하는 모양입니다.
사건도 사건이지만, 사건 이후가 더 문제인 듯합니다.
그 일로 인해 편집국장이 사표를 냈더니 이튿날 즉각 수리되었고, 이에 항의하는 편집국 간부들은 줄줄이 징계를 당했습니다. 최근에는 급기야 막내 기자들까지, 개인 명의로 금창태 사장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여 회사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책은 큰 탈없이 꼬박꼬박 나오고 있으나, 엉킨 실타래는 좀체 풀릴 기색이 없어 보입니다. 시사저널의 기자직 사원은 고작 27명이랍니다. 그 가운데 두 달여 만에 본인 뜻과 무관하게 다섯 명이 일손을 놓아야 했다니 작업 공정이 어떨지 능히 짐작이 갑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논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편집인을 겸하는 경영진의 항변에도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표 수리와 중징계 등 사측의 경색된 조치들이, 정당한 권리 행사를 했다는 사측의 항변을 무색케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습니다.
이번에 <시사저널>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가칭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회장은 언론인 고종석씨가 맡아주셨습니다. 알음알음 가입 의사를 밝혀주신 분들이 3백여 분 있습니다. 이제 막 홈페이지도 마련했습니다(www.sisalove.com). 일단 그동안의 상황을 일별할 수 있게 <시사저널> 노동조합의 자료와 관련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시사저널> 편집국에서는 힘이 된다 합니다. 회원 가입은 홈페이지에 들어오셔서 본인의 실명과 직함,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만 입력하시면 됩니다. 이후 ‘시사모’ 명의의 성명서를 낼 경우 사전에 문안을 보여드리고 참여 의사를 묻게 될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무국
2006년 10월9일
추신 : 사태 이후 <시사저널>(7.24일 발행) 시론 지면에 실린 고종석 씨가 쓴 칼럼을 첨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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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외자의 겸손한 제안 | |
| [875호] 2006년 07월 24일 (월) | 고종석 (소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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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석 | |
이런 글이 ‘시론’ 난에 어울린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내가 <시사저널>과 맺은 인연을 돌이켜보고 싶다. 1989년 이 잡지가 가판대에 처음 꽂혔을 때부터 그 창간 구성원 몇 명과 사적 친분이 있기는 했으나, 내가 <시사저널>과 직업적으로 얽히게 된 것은 1996년부터다. 나는 그해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두 해 동안 <시사저널> 파리 주재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그즈음 나는 파리에서 빈둥거리고 있었는데, <시사저널>에서 일하던 가까운 친구가 다리를 놓아 이 주간지의 ‘식솔’이 되었다. 내가 배곯을까 걱정한 친구의 고마운 배려였다. 정규직은 아니고 계약직이기는 했으나, 나는 이 경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1997년 3월 프랑스 외무부에서 받은 프레스 카드를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그 나라에서 외국 기자들은 해마다 프레스 카드를 갱신해야 했고, 프레스 카드를 새로 받으려면 그 전 해에 받은 카드를 외무부에 되돌려줘야 했다. 나는 귀국이 1998년 3월로 예정되어 있던 터라 이해에는 프레스 카드를 갱신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 1997년치 프레스 카드를 지니고 서울로 왔다. 그 프레스 카드에는, 내 로마자 이름 밑에, 내가 <시사저널> 기자(Correspondant, Sisa Journal)임이 밝혀져 있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파리 주재 편집위원’이라는 그럴듯한 직위는 없어졌지만, <시사저널>과의 관계는 그 뒤에도 띄엄띄엄 이어졌다. 나는 한동안 ‘문화비평’ 필자였고, 지난해 봄부터는 한 달에 한 차례씩 이 난을 메우고 있다. 나는 <시사저널>의 이 외부 필자 경력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긴다.
멀쩡한 감수성을 지닌 저널리즘 종사자라면, <시사저널>과의 인연에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테다. 사실 한국 시사 주간지의 역사는 <시사저널> 이전과 그 이후로 나뉜다 할 만하다. 우선 디자인을 포함한 편집에서, <시사저널>은 그전까지의 시사 주간지들과 또렷이 다른 국제 규범을 선보였다. 이 새로운 시도는 언론계에서 생생한 메아리를 얻었다. 기존 시사 주간지들이 그 뒤 죄다 <시사저널>의 외양을 좇아왔고, 이후 태어난 시사 주간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사저널>과의 인연에 자부심 느껴
그러나 한국 저널리즘에서 <시사저널>의 진정 중요한 공헌은 그 세련된 겉모양에 있지 않다. <시사저널>은 한국 저널리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시사 주간지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인상적으로 보여주었다. 이전까지의 시사 주간지들이 일간지 기사의 ‘슬로 모션’이나 ‘리플레이’나 우수리 창고 노릇을 했다면, <시사저널>은 일간지들이 그 하루 단위 순환의 조바심 때문에 감히 손댈 수 없었던 영역을 새롭게 일궈냈다. 구체적으로, <시사저널>은 심층 분석과 탐사 영역에서 한국 저널리즘을 주도해왔다.
그것은 <시사저널>이 저널리즘의 전문성을 추구하고 성취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창간 무렵부터 지금까지 <시사저널> 기자들은, 이름 앞에 ‘전문기자’라는 말을 표나게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대개가 전문기자였다. 다시 말해 이들은 일간신문의 여느 기자들보다 자신의 분야를 훨씬 더 깊고 넓게 알고 있었다. <시사저널>의 특종들은 흔히 그런 전문성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일간신문들이 <시사저널>을 자주 인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도 거기 있다. 게다가 이 잡지는 한국 언론의 고질이라 할 정파성에서도 자유롭다. 말하자면 <시사저널>은 전문성과 공정성을 아울러 갖췄다. <시사저널>의 이런 성취가, ‘오너’가 바뀌는 경영의 어려움을 딛고 이뤄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매체 구성원들에 경의를 거둘 수 없다.
최근 몇 차례 <시사저널>에서 ‘편집국장의 편지’가 빠졌다. 저간의 사정을 바람결에 듣기는 했지만, 바깥에 있는 사람으로서 시시비비를 가릴 눈이 내게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흐릿한 눈에도 또렷이 보였다. 일이 처리되는 방식이 <시사저널>의 기품과 명성에 걸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에서 ‘편집국장의 편지’를 다시 읽고 싶다. 이윤삼 국장의 편지 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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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파문 1백일
사태 100일을 맞아 노동조합에서 마련한 보고 자료
삼성 그룹 이학수 부회장 관련 기사가 편집국장이 모른 상태에서 빠지면서 시작된 <시사저널> 사태가 1백일 째를 맞았지만(9월26일 현재), 아직까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시사저널 편집국에서는 편집국장의 항의 사표가 수리된 것을 비롯해, 총 5명의 기자가 편집국에 출근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장영희 취재총괄팀장은 무기정직과 출근정지 상태이며, 백승기 사진팀장은 대기발령을 받고 자택 대기 중이다. 사진부 윤무영 기자와 취재2팀 노순동 기자는 3개월 정직에 출근 정지 징계를 받았다.
경고와 감봉, 정직과 대기발령에 출근정지까지---왜 줄징계 이어지나
정직된 기자 뿐 아니라 각종 징계와 경고장을 받은 기자까지 포함하면 이번 사태로 인해 사측이 문제삼는 기자는 총 17명에 이른다. <시사저널>의 기자직 사원은 총 27명에 불과하다. 사실상 이번 파문으로 인해 사측의 경고나 징계를 받지 않은 기자를 찾아보기 힘든 지경이다.
이렇게 줄징계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기자들은 삼성 기사 삭제와 관련해 경영진의 성의있는 태도를 보일 것을 요구하자, 경영진이 관례에 없는 각종 업무 지시를 내려 보내면서 이에 불응하는 기자들을 징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금창태 사장의 태도는 다시 기자들의 분노와 반발을 샀고, 기자들이 개인 명의의 항의 대자보를 붙이는 등 금사장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에 금사장은 기자들의 이름을 지면에서 추방하는 것으로 응수하고 있다. 정직 상태인 기자들의 이름을 ‘마스터 헤드’에서 빼도록 지시하고, 이를 편집국 간부가 이행하지 않자 직접 인쇄소에 지시해 해당 기자들의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마스터 헤드는 해당 잡지에서 매체에 종사하는 이들의 이름을 적시해 언론의 책임성을 높이고자 하는 취지에서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안내 지면이다. 회사 측은 사표가 수리된 이윤삼 국장은 물론, 대기발령 상태인 백승기 사진팀장과 무기 정직 상태인 장영희 취재총괄팀장, 그리고 3개월 정직 상태인 두 평기자의 이름까지 모조리 마스터 헤드에서 삭제하도록 업무 지시 공문을 띄워놓은 상태이다.
현재 편집국의 간부들은 시사저널 관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업무 지시’를 이행하지 않고 있으나, 징계가 누적된 간부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회사 측은 삼성 기사를 들어낼 때와 마찬가지로 인쇄소에 직접 지시해 해당 기자들의 이름을 삭제하고 있다.
<시사저널> 삼성 기사 삭제 사건은, 여러모로 언론계 관행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무엇보다 편집국은 제작 거부나 파업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시사저널의 특유한 편집국 문화와 매체 특성을 고려해볼 수 있다. 시사저널의 기자들은 지난 1997년부터 1999년 서울문화사에 인수되기 전까지, 소유주가 없는 상태에서도 단 한 호도 결호를 내지 않고 매체를 유지해왔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호주머니를 털어 인쇄비를 현금으로 지급해가며 책을 만들었던 <시사저널>의 '이례적인 전통’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7년 동안 기자들은, 회사와 어떤 갈등을 빚더라도 책에 타격을 주어서는 곤란하다는, 스스로 세운 묵계를 지켜왔다.
현재 기자들은 힘겨운 상황에서도 기를 쓰며 책 제작에 매달리고 있는데, 오히려 회사 측은 기자들이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편집국 밖으로 내몰아 책 제작을 힘겹게 하고 있다. 사태가 길어질 수록 매체가 타격을 입는 것이 불가피하다. |
시사모 www.sisal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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