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란 게 어떤 신성함을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예술을 창조한다는 행위는 순전한 노동의 범주에서 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작품이 어떤 대단한 변화를 이루어낸다거나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예술이란 그저 일상을 켜켜이 채워가는 하나의 조각일 따름.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 소설이 무엇을 선전선동하기 위해 씌어졌든,
또는 그저 지적 마스터베이션으로 방출됐든,
또는 원숭이 100만 마리가 100만 년간 타자기를 두드린 것이든 간에
그것은 기껏 소설 또는 그것과 비슷한 무엇일 따름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가 존재를 하고, 그 행위가 점유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끝이다. 다 읽었으면 이제 선전선동을 하든, 마스터베이션을 하든,
원숭이와 함께 타자기라도 두드리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그렇다, 그건 '당신'의 자유다.
나는 대체로 다음 소설을 읽을 자유를 택하고자 한다.

어제는 라커스에서 맥주를 비워가며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 꽤 마음에 들었다.
내 안의 어딘가와 묵직하게 반응을 하여 진동했다. 기분이 썩 좋기도 하고 썩 괴롭기도 했다.
걸어 집에 들어가며 그 진동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설'이란 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집앞에 도달하여 깨달았다. 열쇠를 회사에 두고 왔음을.
집앞까지 왔다가 열쇠를 찾으러 회사로 돌아가게 되는 것에 비견하여
예술, 소설이 그보다 대단한 무엇이라고는 역시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고
씩씩거리며 집문을 열었다.


Posted by H군

"사내와 계집은 말이야, 붙어 있다 보면 품성까지 닮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귀는 상대를 잘 골라야 해."

"인간이란 누구나 상대가 제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하는 주둥이를 갖고 있지.
아무리 바보라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한다니까."

-미야베 미유키, <누군가>(북스피어, 2007) 389쪽







"난 내가 결함투성이 인간이라는 걸알아.
게다가 그걸 고칠 생각도 없는 이기적인 녀석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애정 비슷한 걸 상대방한테 갖고 있다면,
무의식중에 멀어지려고 할지도 몰라."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 하>(북폴리오, 2006), 207쪽

Posted by H군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387)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