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우가 훗날 그의 스승인 김윤식처럼 비평의 한 일가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또는 김현처럼 오래도록 견인력 높은 비평의 자장을 발산할 수 있을 것인가.
그건 알 수 없다(아마도 불가능하겠지. 문학적 감응력을 차치하더라도
꼬붕을 거느리거나 에꼴을 형성하기에 그가 도정한 비평적 지위는 '독고다이'였다).
그렇지만 현장의 비평가로서 김윤식이나 김현이 그래왔던 것처럼
권성우의 오늘의 비평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그리고 그의 미덕은 그 열기를 채 꺼뜨리지 않고 꽤나 오래 지켜왔다는 것이다.
계간지 <Review>에서 (그러니까 94년 겨울이었고 서태지가 표지였다.
그 이전에 <상상>이 창간하였고 <오늘예감>도 계간지화하고 있었다.
<시네21>과 <키노>가 등장하가 직전이었다) '전복적 상상력' '부정적 상상력'이라는
키워드로 문학판에 대해 날카로운 입장을 표명하는 글을 처음 읽고
이후 권성우의 글을 좇아 읽어온 편이다.
발표되는 그의 비평집을 대개 읽어왔고 그가 참여한 <포에티카>도 사보았고
문학권력 논쟁에 참여했던 <인물과사상>, <사회비평>, <황해문화> 등도
놓치지 않고 읽어온 듯하다.
그의 문장이 그가 겨누고, 겨뤄온 대상들에 비하여 현란하거나 화사하지 않다.
그러니까 그의 문장에는 화장기도, 인공의 향도 없다
외국 이론가라는 뽀사시한 덧칠, 또한 부족하다.
그래서(그럼에도?) 그의 비평은 에두르는 바 없이 말하고자 하는 그곳에 위치한다.
꽤 자극적일 수 있는 <논쟁과 상처>라는 제목의 이 책에서도 그렇다.
99년부터 2002년 사이 벌어졌던 '문학권력'에 대한 '논쟁'의 한복판에 서서
발표했던 글을 모은 이 비평집에서 그는 '상처'를 말한다.
서문에서 "나는 글을 쓰는 한, 영원히 그 시절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에는 힘들었으되,
지금은 내 인생의 그 시기를 기꺼이 사랑하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상처는 결코 영광의 상처가 될 수 없다.
이 책에 실린 그의 뜨거운 비평들을 읽어보라.
그리고 문학동네의 남진우를 위시한 그 편집위원들의 비열함,
조선일보를 위시한 거대 언론이 가공한 한국 문학판이라는 '상상의 공동체'에 대한
권성우의 뜨거운 언어는 식은 나의 분노에 군불을 땐다.
그러나 오늘을, 여전히 광화문 한복판에 우뚝선 조선일보를,
문학판에 도도하게 서 있는 그 일당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절망스럽다.
그 상처는 그렇게 헤벌어진 채 여전히 아리다.
그럼에도, 그렇기 때문에 지금 다시 권성우의 이 <논쟁과 상처>는 소중하다.
그래서 이 책이 숙대출판부에서라도 나오게 됨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 책이 많이 읽히기를 희망한다. 여전히 이 절망스러운 이 한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