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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2008. 3. 24. 18:29

모래바람조차 일지 않는 황량한 벌판에서 만연히 읊조리는 기도.

그곳엔 구원도 없고, 당연히 신도 부재한다. 아니,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을 독백.

그래서 문장은 한없이 살풍경해야 하리라.



그러기 위해, 면도를 안 하면 될까. 쳇.

Posted by H군

통곡

2007. 12. 5. 15:33
예비군 훈련 나흘 동안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과 하루키의 새로운 에세이를 읽어야지, 라고

맘먹었다가 불의의 부상(...)에 하루키는 손도 못 대고 <통곡>도 몇십 페이지 남기고 말았는데,

오늘 다른 사람 작업을 기다리는 한량한 시간 동안 <통곡> 나머지를 해치우다.

지난 번 일본 출장 때, 회사 소개서에 그간 계약한 타이틀 리스트를 써놨는데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을 보고, "누쿠이 도쿠로 하면 <통곡>이지" 하는 이야기를

몇 군데 출판사에서 거듭 들어 일본에서 바로 오퍼 넣고 결국 계약한 타이틀이 바로 <통곡>.

그래서 내심 기대에 차서 훈련 기간 읽고 있었는데, 날씨도 싸늘해 죽겠는데

소설 속에서 3인칭으로 기술되는 인물들의 심리는 마른 우물처럼 깊은 공허감으로 울림을 거부한다.

마치 샌드페이퍼로 긁어 영혼이 마모된 듯한 인물들.

근데 사건은 몇십 페이지를 남겨놓고도 무엇 하나 정리되는 기색이 안 보인다.

경찰 내부의 캐리어와 논캐리어 사이의 알력, 연쇄 유아 납치 사건, 밀교의 비밀의식 등

일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라 그리도 <통곡> 타령을 해댔던가, 하며 계약한 걸 살짝쿵 후회하고

이걸 어찌 포장해야 할까(는 내가 고민할 문제는 아니지만) 하면서

내년도 출간계획(역시 내가 낼 문제가 아니지만) 중 뒤로 밀어놓았었는데,

마지막까지 열 페이지 남짓 남기고 갑자기 등장하는 한마디에 망치로 뒤통수를 쿵 얻어맞고 말았다.

아, 이런 서술트릭을 준비하고 있었구나.

그 텅빈 영혼이 심연에서 터져나오는 통곡 소리가 귓가를 울려댄다.

해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최근 들어 누쿠이의 문장이 갖고 있는 질감과 본격이라고 하는 장르가 갖는 분위기와의 괴리가,

독자와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라 지적되고 있지만 (그것들은 상황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타당성을

갖는 건 분명하지만) 문장 자체가 소재나 테마에 그치지 않고, 이정도로 미스터리의 핵까지 이룬 트릭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키고 있는 작가를 나는 알지 못한다."

유기적인 결합 여부는 모르겠지만 그 문장의 힘으로 독자를 390여 페이지까지 (이영차) 이끌고 와

마지막 몇 걸음을 기어가게 만드는 능력은 꽤나 그럴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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