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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4.05 1969

1969

2006. 4. 5. 14:52

붐붐의 the Doors "Touch Me"에 트랙백


붐붐의 위 포스트에 내가 남긴 댓글에

"(1969년은) 사랑과 평화, 마약과 프리 섹스의 해였잖아. 마음 속 동경의 대상이지.ㅎㅎ"

라고 남긴 걸 보고 1969년에 대해 뒤져보다.


1969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라카미 류는 <식스티나인69>에 다음과 같이 썼다.


1969년. 이 해 도쿄 대학은 입시를 중지했다.
비틀스는 화이트 앨범, 옐로 서브마린,  애비 로드를 발표했고,
롤링스톤스는 최고의 싱글 홍키 통키 우먼을 히트시켰고,
히피라 불리는 머리카락이 긴 사람들이 사랑과 평화를 부르짖고 있었다.
파리에서는 드골이 정권에서 물러났다.
베트남 전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이 때부터 여학생들은 생리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즐겁게 살지 않는 건 죄다"라며 '즐거운 에너지'를 한껏 내뿜는 이 소설을 읽다보면

내가 살아보지 못했던 69년이란 해는 뭔가 멋진 일들로 가득 찼을 것 같다라는 느낌이 절로 든다.


주마간산으로 69년을 훑어보자.

우선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당했다.

그의 형, 존 F 케네디가 63년에 암살되고 난 뒤 6년 뒤의 비극이었다.

그리고 재클린은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와 결혼을 발표한다

(음모론 : 케네디 형제의 죽음에는 군사복합체의 협박이 작용했다->

재클린은 자기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오나시스와 결혼했다. 믿거나 말거나).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했다.

61년 소련의 최초로 유인 우주선을 띄워 올리자 케네디가 10년 이내에

미국 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공언했고, 케네디 생전에는 이루지 못했으나

69년 전 세계에 (최소한 방송 화면으로는) 달 착륙 장면이 중계되었다.

그리고 닐 암스트롱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이겠지만, 전 인류를 위한 하나의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사무엘 베케트.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임영웅의 연출로 69년, 국내에 초연되었다.




이 해, 에드워드 T. 아담스는 <사이공식 처형>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베트남 해방전선 간부가 체포되어 연행되던 중 베트남 국가경찰장관이

그 자리에서 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을 촬영한 이 한 장의 충격적인 사진으로

미국의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 여론은 한층 가열되었다.




마리오 푸조는 이 해, <대부>를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72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에 의해 영화화되고 73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다.




비틀즈는 69년 1월 애플사옥 옥상에서 기습적으로 '루프탑 콘서트'를 열었다.

참가자는 카메라맨과 스탭뿐이었으며 마지막 곡으로 'Get Back'이 연주되었다.

이 공연은 <Let it be> 다큐멘터리에 담겨졌고

존 레논은 '우리는 마지막 오디션을 통과했다'라는 말을 남겼다.




프랑스에서는 세계 최초의 초음속 여행기 콩코드가 첫 초음속 시행 비행에 성공하였다.

영국과 프랑스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콩코드는 76년에서야 상업 비행이 시작되었고

안전성과 편리함, 서비스로 고급 여행기로 명성을 떨쳤으나 16대만 만들어지고 단종되었으며

2003년 기체노후와 적자 문제로 운행이 중지되었다.


국내에선 어떤 일이 있었던가.


우선 69년 초 이수근이 베트남에서 체포되었다. 67년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탈출한

이수근은 자유국가 대한민국의 열렬한 환영 속에 1000만원 상당의 재산을 받았고

미모의 여교수와 결혼까지 하였으나 베트남을 통해 캄보디아로 들어간 뒤

북한으로 넘어가려다가 중정요원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해 7월 사형에 처해졌다.

아직도 그가 위장간첩이었는지는 의문에 쌓여 있다.




가을, 클리프 리처드가 한국을 방문했다.

이대에서 열린 클리프 리처드 내한공연 중 무대 위로 팬티가 날아가 충격을 주었다.

그 팬티의 주인이 누군지, 클리프 리처드가 잘 챙겨갔는지, 또는 주인에게 돌려줬는지는,

안 돌려줬으면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가을바람에 얼마나 서늘했을지, 여전히 미궁이다.




신세계 백화점은 삼성그룹 임직원을 대상으로 국내 최초로 신용카드를 발급했다.

실제로 상용화된 그 이후로 78년 외환은행의 비자 카드가 그것.

현재 경제활동 인구의 1인당 카드 보유수는 3.4장이며 발급 카드수는 8천만 장을 넘는다.

이는 2002년 카드대란 직전 1인당 4.6장, 발급 카드 수 1억 장에서 줄어든 것.



1960년에 태어나 1989년에 사망한 기형도는 <위험한 가계 -1969>를 남겼다.


1

그 해 늦봄 아버지는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힘없이 쓰러지셨다.
여름 내내 그는 죽만 먹었다. 올해엔 김장을 조금 덜 해도 되겠구나. 어
머니는 남폿불 아래에서 수건을 쓰시면서 말했다. 이젠 그 얘긴 그만하세
요 어머니. 쌓아둔 이불을 등을 기댄 채 큰 누이가 소리질렀다. 그런데
올해에는 무우들마다 웬 바람이 이렇게 많이 들었을까. 나는 공책을 덮고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 잠바하나 사주세요. 스펀지마다 숭숭 구멍
이 났어요. 그래도 올 겨울은 넘길 수 있을게다. 봄이 오면 아버지도 나
으실거구. 풍병(風病)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잖아요. 마늘을 까던 작은
누이가 눈을 비비며 중얼거렸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수건을 가만히 고쳐매셨다.

2

아버지. 그건 우리 닭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껏 돌보세요. 나는 사료를
한 줌 집어던지면서 가지를 먹어 시퍼래진 입술로 투정을 부렸다. 농장의
목책을 훌쩍 뛰어넘으며 아버지는 말했다. 네게 모이를 주기 위해서야.
양계장 너머 뜬, 달걀 노른자처럼 노랗게 곪은 달이 아버지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를 이리저리 흔들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팔목에 매달려 휘휘 휘파람
을 날렸다. 내일은 펌프 가에 꽃 모종을 하자, 무슨 꽃을 보고 싶으냐. 꽃
들은 금방 죽어요 아버지. 너도 올 봄엔 벌써 열 살이다. 어머니가 양푼
가득 칼국수를 퍼담으시며 말했다. 알아요 나도 이젠 병아리가 아니에요.
어머니. 그런데 웬 칼국수에 이렇게 많이 고춧가루를 치셨을까.


3

방죽에서 나는 한참 기다렸다. 가을 밤의 어둠 속에서 큰 누이는 냉이꽃처럼
가늘게 휘청거리며 걸어왔다. 이번 달은 공장에서 야근 수당까지 받았어. 초
록색 츄리닝 윗도리를 하나 사고 싶은데. 요새 친구들이 많이 입고 출근해.
나는 오징어가 먹고 싶어. 그건 오래 씹을 수 있고 맛도 좋으니까. 집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었다. 누이의 도시락 가방 속에서 스푼이 자꾸만 음악소리
를 냈다. 츄리닝이 문제겠니. 내년 봄엔 너도 야간고등학교라도 가야한다.
어머니. 콩나물에 물은 주셨어요? 콩나물보다 너희들이나 빨리 자라야지. 엎
드려서 공부하다가 코를 풀면 언제나 검뎅이가 묻어나왔다. 심지를 좀 잘라
내. 타버린 심지는 그을음만 나니까. 작은누이가 중얼거렸다. 아버지 좀 보
세요. 어떤 약도 듣지 않았잖아요. 아프시기전에도 아무것도 해논 일이없구.
어머니가 누이의 뺨을 쳤다. 약값을 줄일 순 없다. 누이가 깍던 감자가 툭
떨어졌다. 실패하시고 나서 아버지는 3년 동안 낚시질만 하셨어요. 그래도
아버지는 너희들을 건졌어. 이웃 농장에 가서 닭도 키우셨다. 땅도 한 뙈기
장만하셨댔었다. 작은 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죽은 맨드라미처럼
빨간 내복이 스웨터 밖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는 채소씨앗
대신 알약을 뿌리고 계셨던 거에요.


4

지나간 날들을 생각해보면 무엇하겠느냐, 묵은 밭에서 작년에 캐다 만 감자
몇 알 줍는 격이지. 그것도 대개는 썩어 있단다. 아버지는 삽질을 멈추고
채마밭 속에 발목을 묻은 채 짧은 담배를 태우셨다. 올해는 무얼 심으시겠지
요? 뿌리가 질기고 열매를 먹을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심을 작정이다.
하늘에는 벌써 티밥 같은 별들이 떴다. 어머니가 그만 씻으시래요. 다음날
무엇을 보여주려고 나팔꽃들은 저렇게 오므라들어 잠을 잘까. 아버지는 흙
속에서 천천히 걸어나오셨다. 봐라. 나는 이렇게 쉽게 뽑혀지는구나. 그러나,
아버지. 더 좋은 땅에 당신을 옮겨 심으리시려고.


5

선생님. 가정방문은 가지 마세요. 저희 집은 너무 멀어요. 그래도 너는 반장
인데. 집에는 아무도 없고요. 아버지 혼자, 낮에는요. 방과 후 긴 방죽을 따
라 걸어오면서 나는 몇 번이나 책가방 속의 월말고사 상장을 생각했다. 둑방
에는 패랭이꽃이 무수히 피어 있었다. 모두 다 꽃씨들을 갖고 있다니. 작은
씨앗들이 어떻게 큰 꽃이 될까. 나는 풀밭에 꽂혀서 잠을 잤다. 그날 밤 늦게
작은누이가 돌아왔다. 아버진 좀 어떠시니. 누이의 몸에선 석유냄새가 났다.
글쎄, 자전거도 타지 않구 책가방을 든 채 백 장을 돌리겠다는 말이냐? 창문
을 열자 어둠 속에서 바람에 불려 몇 그루 미루나무가 거대한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게 보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 상장을 접어 개천에 종이배로 띄운 일
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6

그 해 겨울은 눈이 많이 내렸다. 아버지, 여전히 말씀도 못하시고 굳은 혀.
어느만큼 눈이 녹아야 흐르실는지. 털실뭉치를 감으며 어머니가 말했다. 봄
이 오면 아버지도 나으신다. 언제가 봄이에요. 우리가 모두 낫는 날이 봄이
에요? 그러나 썰매를 타다보면 빙판 밑으로는 푸른 물이 흐르는게 보였다.
얼음장 위에서도 종이가 다 탈 때까지 네모반듯한 불바라기 씨앗 처럼 동그
랗게 잠을 잤다. 어머니 아주 큰 꽃을 보여드릴까요? 열매를 위해서 이파리
몇 개쯤은 스스로 부숴뜨리는 법을 배웠어요. 아버지의 꽃 모종을요. 보세요.
어머니. 제일 긴 밤 뒤에 비로서 찾아오는 우리들의 환한 가계(家系)를. 봐요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는 저 동지(冬至)의 불빛 불빛 불빛.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 첫장에서 37의 와타나테는 69년의 가을을 추억한다.



서른 일곱 살이던 그때, 나는 보잉 747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
그 거대한 비행  기는 두터운 비구름을 뚫고 내려와, 함부르크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었다.
11월의 차가운  비가 대지를 어둡게 물들이고  있었고, 비옷을 걸친 정비공들,
민둥민둥한 공항 빌딩 위에 나부끼는 깃발, BMW의 광고판 등 이런저런 것들이
플랑드르파의 음울한 그림의 배경처럼  보였다. 아, 또 독일인가 하고 나는 생각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자 금연등이 꺼지고 기내의 스피커에서 조용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오케스트라가 감미롭게 연주하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이었다.
그리고 그 멜로디는 언제나처럼 나를 어지럽혔다.
아니, 다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격렬하게 내 머리 속을 어지럽히며 뒤흔들었다.
나는 머리가 터져 버릴 것 같아 몸을 움츠리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그  대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독일인 스튜어디스가 내 앞으로 오더니 어디가 불편하냐고 영어로 물었다.
괜찮다, 좀 현기증이 났을 뿐이라고 나는 대답했다.
  "정말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스튜어디스는 생긋 웃으며 가버렸고, 음악은 빌리 조엘의 곡으로 바뀌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북해의 상공에 떠 있는  어두운 구름을 바라보면서,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잃어버린 많은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잃어버린 시간, 죽었거나 또는 사라져 간 사람들,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기억들을.
비행기가 완전히 멈춰 사람들이 좌석 벨트를 풀고 가방과 옷가지 등을 선반에서 내리기 시작할 때까지,
나는 줄곧 그 초원 속에 있었다.
나는 풀 냄새를 맡았고, 살갗에 와 닿는 바람을 느꼈으며, 새소리를 들었다.
그때는 1969년 가을이 었고, 내가 곧 스무 살이 될 무렵이었다.
아까의 스튜어디스가 다시 와서 내 옆에 걸터앉더니 이제 좀 괜찮냐고 물었  다.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어쩐지 좀 외로워졌을 뿐이에요
  (It's  all right  now,   thank you. I only felt lonely, you know)."  
나는 미소를 지었다.
  "이해해요, 저도 가끔 그러니까요
  (Well, I feel same way, same thing, once in   a while. I know what you mean)."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흔들며 좌석에서 일어나 매우 유쾌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즐거운 여행이 되시기를 빌겠어요. 안녕히
  (I  hope you'll  have a nice  trip.   Auf Wiedersehen)!"
  "안녕히
  (Auf Wiedersehen)!"
하고 나도 말했다.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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