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고백하자면 내가 밥벌이 하는 일이 출판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고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일본 책을 뒤져보고 그 책을 국내 출판과 연계하는 짓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면 각종 일본 책을 뒤지는 척하지만
관심을 두고 재밌게 일하는 것은 일본 소설을 뒤지는 일.
그래서 요새 이러저러한 일본 소설을 뒤지며 계약을 해보려고 용을 쓰는데
이제 뒤늦게 이 시장에 진입하는 입장에서 순탄하게 진행될 턱이 없다.
하여 한숨 쉴 일이 대체이고 변기 붙잡고 통탄 일도 없다 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그럼에도 업자로서의 정체성 이전에 독자로서의 즐거움이 대체의 모든 상황을
압도해버리는 다소 불성실한(아니 거의 무책임하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은
이사카 고타로의 <종말의 바보> 같은 책을 읽어버리고는
아, 내가 이 책을 잡았어야 하는데 라는 생각 이전에
아, 읽어 행복하다 라는 감탄에 그저 겨워 즐거워해버린다.
그렇다. 이 소설은 쏙 내 맘에 들어버렸다.
어찌됐든 이 소설은 이렇게 나와주셨고, 독자로서 나는 즐겁게 읽어버렸다.
우선은 그게 좋은 게다.
그리고 내일 아침 잠깐 반성하고 다른 책 뒤지면 되는 거다, 라고 뻔뻔하게 자위하고
독자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오롯이 보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