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인도 여행에서 나름의 원칙 중 하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였고,
또 하나는 한국사람과 부대끼며 지내지 않는다였다.
두번째 원칙이 깨진 것은 레에서 마날리로 돌아왔을 때.
레에서 고산병으로 호되게 고생하여 수지침으로 손을 따도
*리화나를 연신 펴도 나아지지 않아 결국 나흘만에 다시 마날리로 내려오게 되면서
자연스레 한국사람이 머물고 있을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샬롬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닷새 정도 정말 하릴없이 시간을 부쉈었다.
그때 함께 시간을 나눈 이가 승춘이형.
순천에서 농사를 짓다가 장기여행을 떠난 승춘이형은 정말 게으른 여행자였다.
1주일간 한 발짝도 게스트하우스에서 나가질 않는 적도 있으니.
나름 마날리에서 웅기조식하는 기간 함께 게스트하우스 베란다에 앉아
선교사인 주인 아주머니의 눈총을 애써 무시하여 연신 담배를 피우며 한담을 나눴었다.
거기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나눠갖고 단기여행자인 나는 얼마 안 되 한국으로 돌아왔고
몇 달 후 네팔에서 승춘이 형의 엽서를 받았다.
올 여름 형이 1년 6개월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다는 기별을 받았고
지난 토요일 승춘이형이 여행간 만났던 사람들을 초대하여 얼굴을 마주했다.
대부분 6개월 이상의 장기 여행자들이었고 내가 그들과 교류할 수 있는
인도에서의 화제거리는 몇 개 없었지만, 그래도 꽤나 흥겨운 자리였다.
또한 그 짧은 여행기간 동안 스쳐 지났던 얼굴들을 서로 기억하고 있다는 데
놀라움과 함께 어이 없는 웃음이 몇 숨 터졌다.
맥그로드간즈에서 마날리로 떠나기 전 리 카페에서 만났던, 인도 온 지 사흘 됐다는
신혼부부는 그때의 초짜행세를 기억하는 내가 민망할 정도로
인도 전역과 동남아시아, 영국, 독일을 다녀와 숨가쁘게 여행 에피소드를 털어놓았고
레에서 마날리까지 12일간 걸어오던 두 명의 총각은 어느 새벽 짚차에서 내려
담배 한 개비를 건넸던 한국인이 나라는 걸 기억해냈다
(담배 한 갑도 아닌 한 개비라니! 이 궁상한 여행자의 인심이란!).
그리고 선교를 하기 위해 네팔에 왔다가 잠깐 샬롬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러
일을 도왔던 발랄한 대학생 미린 씨가 지난 여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순간 말문을 닫게 만드는 소식도.
시간이 이렇게 지나 그때 여행을 떠났던 정황은 아스란하고
여행은 추억되고, 언젠가의 다음 길을 꿈꾸며 비루한 일상을 참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