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일 보려 화장실 갔더니 변기에 물이 가득 차 있다.
어제 굵은 놈을 내려보낸 기억이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인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코감기에 걸려 크리넥스 휴지로 연신 풀어낸 놈들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었다.
곧 이사 와서 크리넥스 휴지로 뒷일 처리했다가 막힌 적이 있었는데 또 저지른 것이다.
일이 급하니 수위아저씨에게 막힌 데 뚫는 곳 전화번호를 물으러 내려가기 위해
문을 제끼니 문밖은 설원이다. 매년 겪는 광경이지만 새삼 그럴싸하다.
그러나 잠시의 감탄은 다시 일의 급함에 밀려 수위 아저씨를 찾아 전화번호 말해달라 했더니
자기가 해주겠다고. 다행히 큰 일 보고 막힌 게 아니라 그 광경이 심하게 민망하지는 않아
감사히 도움을 청했다. 수위 아저씨 하는 걸 보니 요령이 있다.
쇠 옷걸이를 뺀찌로 매듭을 풀어 길게 뽑아내고는 그걸로 변기 속을 쑤셔댄다.
그러니 분해된 듯한 휴지가 올라오다가 물이 쏘옥~빠져나간다.
그 요령 있는 솜씨가 바깥 풍경에 대한 감탄 이상으로 감탄스럽다.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조아리고 급한 일을 처리하니 아침이 느긋하다.
아침을 먹고 티비를 보다가 저녁 약속 이전에 회사에 들러 일할 요량으로
옷을 챙겨 입고 헬스장으로 가다.
시간이 넉넉하니 오늘은 좀 길게 걸어야겠다 싶어 2시간 가까이 걷는데
전화 3통에 문자 하나가 온다.
앞선 전화 2통과 문자는 친구 Y의 위치를 찾는 것. 내가 Y의 매니저인가 싶다가도
오전에 통화한 전과가 있으니 아무개를 찾으면 Y와 연락이 가능하다고 일러주다.
또 한 통의 전화는 동창 딸래미 돌잔치인데 오고 있냐는 전화.
허걱. 완벽히 까먹고 있었다. 쯧쯧 혀를 차는 친구놈에게 숨가쁜 목소리로
미안타 전할 수밖에.
그리고 지금은 회사. 역시 새삼스러운 감탄이지만,
수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보기드문 이 회사의 장점은 역시 창밖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