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하이텔, `역사 속으로..'
하이텔이 다음달 말로 사라진다고 한다.
하이텔이 전성기가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90년대 학번, 그러니까 70년생들이면
하이텔이나 천리안, 또는 나우누리와 같은 이른바 PC통신에 대한 나름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 하이텔을 써본 것은, 94년 2학기, 학교 교지에 들어가면서 교지에서 쓰던 하이텔 아이디를
공유하게 되면서부터. 그러나 여러 사람이 쓰다보니 낯선 남자로부터 "XX님 어젯밤에는 즐거웠어요~"와 같은
야리꾸리한 귓속말(지금이면 인스턴트 메시지, 이른바 쪽지일텐데 하이텔에선 귓속말이라고 불렀던 듯)이
날라와 95년쯤부터 내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때의 아이디는 1973pin.
사실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서 따 1973pinball이라고 입력하라고 했는데 글자 수 제한되는 줄 모르고
치고 입력하고 나니 1973pin이 돼버렸다. 그래서 73년생이냐는 질문을 꽤 받았는데 온라인상에서 부정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아하~" 이러면서 73년 이전생으로 멋대로들 생각했다.
뭐 불평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각설.
하이텔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건 모 영화동호회.
이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연락되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가끔 영화판이나 관련 지면을 보다보면
그때의 인물들이 불쑥 튀어나와 미소 짓게 된다(물론 꼴보기 싫은 인간이 조금 더 많긴 하다).
이렇게 영화판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마니아틱한 인물도 많아서인지
어울리기도 잘 어울렸지만 또 싸움도 꽤 많았던 곳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신촌의 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여서
하루는 선글라스 끼고 온다거나, 하루는 검정옷을 입고 온다거나 하면서 즐겁게들 놀았다.
입에 담배를 물고 피쳐 갖다주고, 새우깡 더 달라고 하면 봉지 채 던져주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 하이텔의 동호회에 가입하여 놀았던 인물들은
마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제이스 바에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 별로 쿨할 것도 없는 인생들이
쿨한 흉내를 냈던 게 아닐까. 그림 속의 원숭이처럼.
"왼쪽 원숭이가 너고, 오른쪽이 나지. 내가 맥주병을 던지면 네가 술값을 던져 보내는 거야."
하이텔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