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TH

2007. 3. 26. 15:06

오츠 이치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된 것은 <너밖에 들리지 않아>와 <쓸쓸함의 주파수> 두 권.
두 권 모두 라이트노벨로 분류될 만한 작품이라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오츠 이치에 대한 소개를 보면 '경이의 천재 작가'라는 수식어가 늘상 붙어 있다.
국내에 소개된 두 작품만을 보면, '엣, 정말 그럴까?'와 '음, 어쩜 그럴지도...' 사이에서 망설이게 하지만
최소한 <GOTH>를 보면 '나루호도なるほど'가 절로 나오게 한다.
<GOTH>가 거머쥔 타이틀만 봐도, 본격 미스터리 대상,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2위,
야후재팬 베스트 미스터리 1위 등 2002년과 2003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다시 놀라게 하는 사실은, 이 작품이 쓴 시기가 20살이라는 것.
이러니 '경이의 천재' 운운할테고.
그럼 <GOTH>가 진짜 그만한 값을 하는가. 아주 흡족스레 그렇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과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엽기적이다.
동물과 인간의 손목을 잘라 모으는 남자, 정원에 인간을 생채로 매장하는 남자, 밤마다 개를 사살하는 소녀,
여성을납치한 뒤 온몸 해부하고 나무에 걸어두는 남자 등등.
이런 내용만으로도 괜히 거북스러워질 것 같은데 그닥 그렇지가 않다.
죽이는 자나, 죽는 자나 서로 납득한다는 듯 그 엽기적인 행태들이 설득력 있게
(설득력 있는 엽기라는 것 자체가 뭔가 형용모순 같지만) 그려지며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설정과 구조의 힘도 있겠지만, 문장의 힘도 크다.
문장 하나만으로는 묘하게 치졸하거나 유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지만(라이트노벨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위화감 없이 전체 속에서 문장은 기능한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아주 기분 좋은 온도에서 샤워하는 느낌이랄까.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런 온도.
전체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마지막에 실린 <Voice>.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니 당연하게도 이야기가 매조지되고, 그 매조지 짖는 방식이 꽤나 마음에 든다.
서술트릭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지만 <GOTH>라는 전체 구조 속에서 이런 방식으로 작용하는
서술트릭은 꽤나 매력적이다. 독자의 마음을 서서이 조여가다가 기분 좋게 안도하게 만드는 끝맺음.
읽기 조금 불편했던 것은 <Dog>와 <Grave>.
<Dog>는 개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 방식이 낯설어 읽는 데 조금 힘들었고,
<Grave>는 심리묘사가 조금 장황해서 늘어진다는 느낌.
어쨌든 호러든, 본격 미스터리든, 라이트노벨로서든 이 작품은 보기 드문 퀄리티를 보여준다.
어서 한국에 소개되어 오츠 이치가 제대로 평가 받기를!

*사실 꽤나 오래전에 계약된 걸로 알고 있는데 여태껏 안 나오고 있다.
이번에 나올 때는 괜히 라이트노벨풍으로 꾸미지 말고 제대로 된 단행본 형태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츠 이치의 문장은 대체로 간결하고 단아하다.
일어 원서 초기 입문용으로는 제법 괜찮은 작품이 아닐까 싶은.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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