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건 즐겁다.
원체 수다스러운 인간인지라, 특히 술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서 문자텍스트를 읽는 것, 역시 즐겁다.
굳이 그걸 '대화'라고까지 표현할 나위는 없지만, 역시 혼자할 수 있는 것 중
독서만큼 즐거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처럼 말귀 못 알아들었다고 군소리 들을 일도 없고,
썰렁하다고 핀잔 먹을 일도 없으며, 술 취해 저지르는 뻘짓도 없다.
'책'과 그것을 읽는 '나'가 있고, 그 '책'은 '나'에게 온전히 전유된다.
괜한 수인사도, 호들갑스러운 맞장구도, 쌉쌀한 헛웃음도 필요없다.
그냥 내 멋대로 읽으면 그만.

그런데, 최근 어떤 소설과 관련한 독자 문의를 받으며, 멋대로 읽는다는 게
다소 아슬아슬한 데가 있다는 걸 새삼 절감.
한 번은 이 소설의 번역이 잘못된 게 아니냐며 전화가 왔다.
어째서 처음에는 '나'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그'가 나오냐는 거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다가 계속 말을 듣다보니 이 독자는 소설이 어떻게
1인칭 시점에서 기술되다가, 3인칭 시점으로 바뀔 수 있냐는 거다.
이 소설이 '나'에 의해 기술되는 부분과, 3인칭으로 기술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그걸 전혀 납득을 못하는 것이다.
번역 잘못된 것이 아니니, 읽다보면 그 방식을 이해하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또 한 번은 메일로 문의가 왔다.
읽으면서 나오는 오타를 나올 때마다 계속 보내오더니(이건 부끄럽지만 고맙기도 하다)
다소 황당한 오타 지적을 해왔다.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어떤 부탁을 하였고, 남편은 이에 충실히 따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서 작가는 남편을 '늙은 하인'이라고 은유하는데 이 독자는 그걸 전혀 이해 못하는 게다.
집안에 하인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늙은 하인이 나오냐고 지적을 한다.
이러저러해서 저자가 쓴 은유라고 답을 해도 통 납득을 못하겠다고 메일이 왔고
원서에 명백히 그렇게 나와 있다고 다시 메일을 보내자 그제서야 잠잠.

(재수없는) 이인화의 첫 소설의 제목에서 따자면,
"내가 읽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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