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대여섯살 후배(작가 지망생)에게 권할 만한 책,
내 젊은 날 좋은 영향을 주었던 책 몇 권씩만 추천해 주시겠어요?"
라고 하셨길래 잠시 고민해본다.
우선 떠오르는 것들.
하루키의 초기작들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 핀볼> <중국행 슬로보트>
하루키가 재즈바를 운영하며 밤에 부엌 테이블에 앉아 처음 소설을 쓰기 했을 때
문장이 안 풀리자 영어로 우선 쓰고 그걸 다시 일어로 고쳐 쓰면서
글을 만들었다고 한다.
<양을 둘러싼 모험>이라는 장편을 쓰기 위해 재즈바를 닫고 전업작가로 나서기 전까지의
소설들에는 왠지 모를 밤의 공기가 배어있다. 가게 문을 닫고 부엌 테이블에서
만년필로 원고지 칸을 메워 나가는 그 심야의 기운, 일상의 공기들,
짧은 시간에 가장 경제적으로 글을 만들어나가야 했기에 더욱 심플할 수밖에 없었던
그 문장들이 읽힌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 나도 뭔가 써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고종석 - <고종석의 유럽통신>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 <제망매>
지금은 사라진 '길'지에 연재됐던 유럽통신은 고등학생이었던 내게
'길'이냐 '말'이냐 라는 고민을 말끔하게 해소해주었던 연재물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몇몇의 그네들에게 항시 선물했던 책이었다.
<사랑의 말, 말들의 사랑>은 한국어의 에로틱함, 애틋함, 야릇함을 보여준다.
그 속살의 아름다움이라니.
<제망매>는 자신이 가장 잘 쓸 수 있는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운다.
스티븐 킹 - <유혹하는 글쓰기>
현존 작가 중 가장 많은 책을 팔아 치운 작가 리스트에서도
상단에 위치할 스티븐 킹이 쓴
이 창착론은 실하기 이를데 없는 곶감 꼬치다.
빼먹을 거리로 넘쳐나는 이 책을 읽고
어떤 이는 소설가가 되기를 꿈꿀 것이고 어떤 이는 편집자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행복한 독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이 책에서 스티븐 킹이 전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다.
"많이 읽고 많이 써라"
당신이 대단한 천재가 아니라면, 많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은 많이 쓰기.
다행히 나는 소설가의 꿈이 없기 때문에 많이 읽는 것으로 충분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