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경력이 나보다 조금 짧은 어느 친구가 번역자가 써준 검토서를
어떤 식으로 보고 판단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물어온다.
잘난 척 너스레를 어찌 떨었냐 하면,
자기 취향으로 보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으로 나왔을 때의 상품으로서의 가치다,
내가 재밌을 것 같은 책이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재밌어야 할 책이 절대적 기준이다,
검토서를 보면서 띠지문구나 표지문구가 바로 떠오르는 책이면 좋은 거다,
어떤 코드로, 어떤 화제성으로 사람들에게 팔릴지 눈에 보여야 한다,
어떤 상을 받았고, 판권은 몇 개국에 팔렸으며, 몇 부나 팔렸는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졌는지, 그럴 가능성은 있는지,
앞으로 계속 팔릴 만한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작가는 잘생겼는지, 이쁜지,
나중에 이 작가가 히트작을 낼 만한 작가인지, 계속 거래할 만한 작가인지,
이도 저도 아니면 회사 브랜드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될 책인지 등등등....
이렇게 떠들었지만 나라는 인간은 여전히 소설만, 그것도 장르소설만 읽고 있다.
위의 헛소리가 무얼 의미하는지는 회사에서 매일 깨지면서 조금씩 깨닫고 있지만
나라는 인간이 어찌 취향을 버릴 수 있겠는가.
일본 책을 기획, 검토하면서도 여전히 한쪽눈은 편향적인 취향에 못박아 놓은 채
다른쪽 눈만 다문다문 좌우로 돌리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