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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칼럼] '시사저널'사태가 무서운 까닭
지난해 6월 한 재벌회사 관련 기사가 발행인의 지시로 인쇄 직전에 삭제된 데서 비롯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태가 황당한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기사가 빠진 데 항의해 편집국장이 낸 사표는 즉시 수리됐고, 기사 삭제와 편집국장 사표 수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이 직무정지나 대기발령 같은 중징계를 줄줄이 받은 데 이어, 경영진은 노동쟁의의 와중에 대체 인력을 투입해 기자들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잡지를 지난주에 이어 두 호째 내 놓았다.
▲ 1월18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고종석 칼럼 |
● 노동쟁의 와중에 대체인력 투입 제작
반년 이상을 끌어오다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완전한 대체인력에 의한 제작'이라는 살풍경을(차라리 '진풍경'을) 빚은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해졌음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러나 자본의 욱일승천 자체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판단을 이 자리에서 내리고 싶진 않다.
한 사회의 모든 가치와 동력이 자본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특정한 개개인의 욕망이나 윤리를 떠나서 한국사의(어쩌면 세계사의) 현단계가 짜낸 구조나 '대세'의 문제일 테다. 또 이 사태의 핵심이라 할 편집권의 귀속 문제나 대체인력 투입의 위법성(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43조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위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과 관련해 채용, 대체, 도급,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에 대해서도 시비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 언론의 편집권은, 시사저널 경영진이 주장하듯, 최종적으로 발행인에게 속할지도 모른다. 또 지금 시사저널 제작에 투입된 외부인력을 이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라 우겨 말한다면, 이 잡지사 경영진은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사저널 경영진의 입장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이해해준다 할지라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그들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반년 이상 경영진이 보여준 행태가, 위법 여부를 떠나, 몰상식해서다.
편집국장 몰래 인쇄소에서 기사를 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몰상식했고,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을 줄줄이 중징계 처분한 것이 몰상식했고, 급기야 노조가 파업을 하자 다른 언론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필자들을 동원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잡지를 내놓은 것이 몰상식했다. 말하자면, 이 사태 내내 시사저널 경영진이 기자들과 맞선 방식에는 기품이 없었다.
지난주와 이번 주 시사저널은 그간 정파적 치우침 없이 시시비비에 공정했던 이 잡지에 강한 정파성의 너울을 씌웠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짝퉁'이라고 부르는 이 두 호 기사들의 본질적 문제는 그 논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품 없음'에 있다.
기실 한국의 소위 주류 저널리즘이 민주화 이후 드러내고 있는 구접스러움도 그 논조에 앞서서 그 언어의 기품 없음에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게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권 홍보담당자들의 기품 없는 언어는 주류 저널리즘의 기품 없는 언어가 거울 저편에 만들어놓은 짝패인지도 모른다.
지난주와 이번 주의 시사저널은 그간 논조의 공정함에 더해 언어의 기품까지 보여주었던 이 잡지의 역사에서 큰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들의 기품 없음은 경영진이 이번 사태에 대처해온 방식의 기품 없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 기품 없는 저널리즘 언어가 더 섬뜩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주와 이번 주 잡지를 '짝퉁 시사저널'이라 부를 때, 거기선 얼마간의 경멸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 '대체 시사저널'이 경멸스럽다기보다 무섭다.
이 두 호는 미국 작가 잭 피니의 SF스릴러 소설 <바디 스내처>(1955)에 나오는, 인류의 신체를 취해 지구에 번식하는 외계생물을 섬뜩하게 연상시킨다. 껍데기는 영락없는 시사저널이지만 속은 '스내처(강탈자)'의 것인 이 '가짜 시사저널'이 힘겹게 저널리즘의 기품을 견지하고 있는 몇몇 매체들마저 감염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오늘,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어젯밤 김훈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칼의 노래>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시사저널 후배들에게는 그저 편집국장을 지낸 선배이지요). “<짝퉁 시사저널>이 나왔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더군요. 컴퓨터를 배격하는 아날로그적인 양반이라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을 보지는 않았는데 어떤 매체의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구요. 오피스텔에 칩거해 글만 쓰느라고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왜 미리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서운해 하시더군요. 오늘 일산 김선배 집 앞 커피숍에서 <시사저널>에서 한철을 보냈던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낮 12시에 만나서 오후5시30분이 되어서야 헤어졌습니다. 긴긴 시간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요. 아, 저는 물론 술은 아니 마셨습니다. 1월1일에 술을 끊기로 결심했으니까요(타이밍 한번 정말 잘못 잡았습니다). 김선배는 아직 <시사저널>899호는 받아보지 못했더군요. 오늘 집에 가면 와 있을 거라구요. 그러나 주변의 전언으로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퇴기(퇴직한 기자의 줄임말)’는 여기 일일이 옮겨적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새벽까지 마감하고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해장하고 아침해를 보면서 퇴근했던 일, ‘청와대 밀가루 북송사건’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고소를 당해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일, 한 주 걸러 한번씩 고소장을 받아들던 일, 그보다 더 자주 언론중재위에 불려갔던 일, 걸핏 하면 사표 쓰고 칩거한 김선배의 뒷감당을 하느라 후배들이 애먹었던 일. 그러다가 김선배의 눈에 물기가 비치더군요. “내 청춘을 바친 잡지인데, 후배들이 그 어려운 시기도 넘기면서 지켜온 제호인데‘’‘” 말을 채 잇지 못하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너무 울어서 더는 울고 싶지 않았던지라 퉁명스레 맞받아쳤지요. “청춘은 무슨 청춘, 선배는 이미 한물 간 나이였어요. 30대인 우리가 청춘의 절정이었죠.” 김선배는 계속 우기더군요. 자기도 청춘이었다구요. 나이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청년이었던 것만큼은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김선배는 말하더군요. 편집국장하면서 굉장히 편했다구요. 실무는 몽땅 후배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편집국을 공격하는 외적만 방어했노라고. ‘외적만’이라고 김선배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외적의 출몰이 좀 잦았던가요.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적인 잔재가 남아 있던지라 청와대,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검찰 에서부터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문제를 까발린 기사에 대해 가만놔두지 않겠다고 으름장 놓는 곳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문 방송이라는 거대한 보호막도 없는 자그마한 독립매체가 어지간히도 까불었던 셈입니다.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 술기운 탓인지 김선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 시사저널에 정신적인 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당신들도 다 마찬가지고.” 심각해지기 싫어서 ‘뼈는 몰라도 연필이랑 지우개는 많이 갈아바쳤죠’라고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원고지에 연필로 데스크 컬럼을 써내려갔던 김훈 선배는 책상 주변에 지우개똥을 어지간히도 흘려놓곤 했었으니까요). ‘짝퉁 시사저널’로 화제가 옮겨가자 김선배는 비통해했습니다. 수많은 정기구독자를 생각하면 결호를 내서도 안되지만, ‘짝퉁’도 말이 안되는 일이라구요. 생각만 해도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구요. 시사저널은 단순한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재산인데, 그런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푸르른 청춘과 뼈를 갈아바쳤는데, 그런 매체가 한번 세상에 나와 착근하려면 십년 이십년도 더 걸릴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라구요. 이건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능욕이라구요. 옆에 있던 또다른 퇴기가 말했지요. 우리가 이럴진대 거기 몸담은 후배들은 짝퉁 시사저널을 보면서 얼마나 괴롭고 모멸스러웠겠냐구요. 젊은 후배들 중에는 잡지 만드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아서 아예 집에도 안 들어가는 놈들도 있다구요. 김선배가 되묻더군요. "야, 정말 그러냐. 고놈들, 정말 이쁘다. 언제 술이나 사줘야겠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급기야 김선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설 때 “소설가 김훈 선생님 아니냐?”고 반색하며 맞았던 여주인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구요(다 늙은, 또 늙어가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울다 웃다 하는 희한한 풍경을 어찌 받아들일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김선배는 시사저널의 오늘을 있게 만든 건 소유주도, 전현직 기자도 아닌 독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독자들에게 지금의 사태는 너무도 면목없고 미안한 일이고(잘잘못이 어디에 있던 간에), 하루 빨리 진품 시사저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게 오늘 술자리의 결론이었지요. 그러니 사태 해결을 위해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해보자고요. 오늘날 시사저널 사태가 파행으로 치달은 원인이 편집권은 사주나 발행인 개인의 것이 아닌 편집국 구성원의 이성의 산물이라고 믿으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온 <시사저널>의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후배들과 새로운 발행인과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그런 전통을 만들어낸 선배들 역시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이니까요. 마음만큼이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허허벌판 일산에서 ‘퇴기’ 출신 원고 노동자-한명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나머지 둘은 별볼일없는 프리랜서였지만요-셋은 ‘주민등록주소지’인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돌아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친정어머니가 말하시더군요. “야, 군대서 옷 왔다.” “어머, 그래요?” “근데, 뭐 학사경고장인가 하는 것도 왔더라.” ‘군대에 온 옷’은 1월2일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한 큰애가 집으로 부쳐온 사제 옷이고, ‘학사경고장’은 큰애가 다니는 대학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아, 큰애가 한창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김선배가 얘기했듯이 ‘뼈를 갈아’ 잡지를 만드느라 아이를 방치했고, 심지어는 ‘악마의 빚독촉 같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매체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 때문에 주중에는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왔었지요. 안팎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셨겠지요.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한 잔, 아들 때문에 한 잔! 그러나 금연하면서 깨달은 진실은 담배가 풀리지 않는 원고를 대신 써주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들 역시 한잔 술이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내 청춘을 실어보낸 <시사저널>이 지금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내 마음의 빚인 큰아이가 제 갈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서명숙이 만난 김훈 ,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금창태 "'짝퉁' 시사저널 보도에 명예훼손 소송" |
"왜곡 주장 때문에 이념적 세력의 공격목표 돼" |
등록일자 : 2007년 01 월 17 일 (수) 11 : 17 |
지난 5일부터 기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시사저널>의 금창태 사장이 16일 "<오마이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왜곡된 글을 올린 서명숙 씨 등 네티즌들에 대해 명예훼손과 민사배상 청구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기자협회보>가 지난 9일 발간된 899호 시사저널을 '짝퉁 <시사저널>'로 표현한 데 대해서도 추가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
강이현/기자 나도 부기해놓는다. 시사저널 899호, 900라고 감히 명명된 잡지는 '짝퉁 시사저널'이다 라고 저도 정확히 발언합니다. 저도 고소하시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