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2006. 5. 24. 14:50




홍대에서 사람 만나고 돌아가는데 거리에 사람들이 와글거린다.

10시 좀 지난 시간인데 왜 이리 사람이 많은걸까 생각하다가

빨간색 티와 두건 따위를 뒤집어 쓴 무리가 점점이 보이다가

눈을 한 번 흐리니 통째 빨간 덩어리로 보인다.

허걱, 축구.

아, 세네갈과 축구가 있었지.

마침 재수 없게도 축구 끝난 시간에 지하철역으로 향한 게다.

홍대역에서 바로 합정역에서 갈아탈려고 나서는데

빨간 떼거지가 습격하듯 지하철로 몰려온다.

순간 뭐라할 수 없는 공포감, 그리고 갑자기 솟아오는 토기...

(외려 월드컵경기장역에 빨간 무리들은 숫자는 더 됐지만

아이들이 섞여 있기도 하여 덜 공포스러웠고 덜 메슥거렸다).

지난 월드컵 기간 내내 군대에 있다가 주말에 서울에 올라왔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는 마침 스페인과 8강전이 있던 날.

강변역에서 2호선을 타고 가는데 지하철역 곳곳에 박혀 있던 빨간색 티를 입은 인간 중

한 인간이 갑자기 "대한민국~" 외치가 차량 안 승객들이 대부분 호응하며 박수를 친다.

그 순간의 컬처 쇼크라니.

(그때는 생각 못했지만 지금 생각하니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라는 소설 속 상황이

떠오른다. <신체강탈자의 습격>이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유명한 그 소설.)

군대 시절에 대해 그 어떠한 것도 미화하고 싶지 않고 추억으로 담아두고 싶지 않지만

내가 2002년 월드컵 당시 그 붉은 광경 속의 한 점으로 안 있게 된 거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물론 대학 다닐 때 빨간티 입고 발광하던 무리들에 비하자면

지금의 편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나에겐 레드컴플렉스가 있나보다.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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