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2006. 5. 1. 16:51

지난 주말, 전주에 출장을 빙자한 맛집 기행, 또는 맛집 기행에 덤으로 출장을 다녀오다.

오원집의 양념돼지구이, 전일집의 북어와 계란말이, 투가리와 풍전의 콩나물 국밥,

오시롱감시롱의 떡볶이와 순대, 용진집의 삼합 등에 대해선 다음에 말하자.

이번 전주행의 핑계이자 덤은 김용택 선생 뵙기.

갑작스레 원고가 넘어와 급하게 진행하고 있어 목요일 저녁에 재교지를 선생께 파일로

넘겨서 전주 가서 받기로. 그리고 선생 사진도 몇 컷 건질 겸 해서 약속을 잡다.

토요일 저녁 선생 자택으로 찾아 뵙다. 선생은 늦은 저녁을 챙겨먹고 있고

사모는 전을 하나 부쳐주며 캔맥주 하나를 챙겨준다.

아, 저 이가 김용택 선생의 아내되시는 분이구나.

선생의 원고를 읽으며 드러나는 아내에 대한 애틋한 연모에 많이 궁금했다,

과연 어떤 분일까 하고.

그리고 선생이 최근 펴낸 시집 <그래서 당신> 실린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이란

사랑 노래를  회사에 읽고 마음이 너무 먹먹하여 한동안 일이 안 잡혔음을

선생과 사모에게 고백했다.

참 보기 좋았다.

사진을 좀 찍겠다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부인이 내 뒤에 서더니

선생을 웃겨주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선생이 방긋 미소를 짓자 "당신은 나만 보면 그렇게 웃음이 나와요?"하고

애정 넘치는 지청구를 날린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눈물이 나올 것처럼 좋았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며 햇살을 쏟아냅니다 눈이 부시네요 길가에 있는 작은 공원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디에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지요 차들이 지나갑니다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늘 보던 풍경이 때로 낯설 때가 있지요 세상이 새로 보이면 사랑이지요 어디만큼 오고 있을 그대를 생각합니다 그대가 오는 그 길에 찔레꽃은 하얗게 피어있는지요 스치는 풍경 속에 내 얼굴도 지나가는지요 참 한가합니다 한가해서, 한가한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네요 그대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낡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그대를 생각하다가 나는, 무슨 생각이 났었는지, 혼자 웃기도 하고, 혼자 웃는 것이 우스워서 또 웃다가, 어디에선지 불쑥 또다른 생각이 날아오기도 합니다 생각을 이을 필요도 없이 나는 좋습니다 이을 생각을 버리는 일이 희망을 버리는 일만큼이나 평화로울 때가 있습니다. 다시,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그대를 기다립니다 어디서 그대를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습니다 살아온 날들이 지나갑니다 아! 산다는 것, 사는 일이 참 꿈만 같지요 살아오는 동안 당신은 늘 내 편이었습니다 내가 내 편이 아닐 때에도 당신은 내 편이었지요 어디만큼 오셨는지요 차창 너머로 부는 바람결이 그대 볼을 스치는지요 산과 들, 그대가 보고 올 산과 들이 생각납니다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갑니다 기다릴 사람이 있는 이들이거나, 기다리는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는 이들은 행복합니다 살아오면서 당신는 늘 내 편이었지요 어디에서 기다릴까 오래 생각했는데, 이제 어디에서 기다려도 그대가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도 세상도 저기 가는 저 수많은 차와 사람들도 내가 사는 세상입니다 사랑은 어디에서든 옵니다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이렇게 색다른 사랑이 올 줄을 몰랐습니다

그대를 기다리는 동안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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