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달콤하게 보다가 의외로 눈보라가 오래 갈지도 모르겠는데.”에이이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달콤하게? 눈보라가 맛이 있습니까?”
나는 느낀 그대로 질문했다.
-이사카 코타로의 <사신 치바>, '산장 살인 사건' 중
위 인용문 중 '나'는 바로 사신(死神) 치바. 인간의 외모로 변신할 수 있으나
인간의 어법, 특히나 비유에는 약하다.
그래서 앞 사람의 말을 듣고 "눈보라가 달콤하냐"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첫번째 대사에서 "달콤하다"라는 말은 아마도 일본어 "甘い"를
번역했을 것인데 여기에서 "甘い"의 용법은 "달콤하다"가 아닌
"안이하다, 어수룩하다"(뉴에이스 일한사전 "甘い" 중 6번 용례)일 것이다.
자주 쓰는 표현이니 번역자가 실수한 것은 아니고 첫번째 대사에 이어지는
사신의 말 때문에 굳이 "달콤하다"라고 쓴 것이리라.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건 한국어 사전의 용례에서 "달다"나 "달콤하다"가
"안이하다, 어수룩하다"라고 쓰이는 경우가 없다라는 것
(내가 과문하여 그런 말쓰임새가 있는데 모르고 있는 거라면...
그래도 넘어가자).
이 문제의 "달콤하다"를 적절하게 해결할 만한 마땅한 대체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 위 인용문을 다르게 표현할 경우의 수는 무엇일까.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떠오른다.
하나는 괄호나 각주를 통해 "甘い" 용법과 사신 치바의 오해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
그러나 소설에서 이런 게 달리면 지저분해지기 일쑤이고 다소 구차하다.
그럼에도 정확하게 의미 전달을 할 수는 있다.
또 하나는 문장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것. 예컨대 다음처럼.
"하지만 그렇게 안일하게 보다가 의외로 오래 가서 눈보라에 쓴맛을 볼지도 모르겠는데.”
에이이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쓴 맛? 눈보라에 쓴 맛이 있습니까?”
이렇게 되면 문장의 전체적인 뜻은 통하게 되는데 역시 원문을 훼손하게 되어
고쳐놓고 왠지 뒷맛이 찝찝하다.
개인적으로는 설명을 다는 쪽을 택하겠지만.
역시 이것도 취향의 문제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