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나의 아내. 죽은 지 백 년 되는 어느 외국 작가에 대해서
이해한 것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한 사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정상인가?
책은 그녀가 이러저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은 그녀가 한 행동만 말한다.
책은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곳이고, 삶은 설명이 없는 곳이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이라는 점이다.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 209쪽
각주에 의한 글쓰기란 이런 게 아닐까.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과연 어느 것이 진짜인가?라는 질문을 맥거핀으로 두고
<마담 보바리>의 작가 귀스타프 플로베르에 대한 전기물이자, 그에 대한 르포이자,
에세이로,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각주로 글은 이루어진다.
쉼없는 인용을 자리자리 마다 배치하고 연결하는 아찔한 솜씨, 신랄한 유머에
줄리안 반즈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자는 욕구는 물론,
당연하게도 플로베르의 텍스트를 읽어야 할 당위를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