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2

2008. 1. 22. 13:20

1시를 갓 넘긴 종로의 카페.

창가 벽에 오도카니 자리 잡은 나름 전용 테이블.

뒤로 4시 방향의 두 분의 아주머니(와 언니의 경계에 선)는 뭔가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하다가

갑자기 한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헬스 동작을 시연한다.

"오른팔을 긴장하면서 이렇게 흔들어야... 이거 한달만 하면 몸짱이라니까."

몇 차례 과격한 시연이 거듭하더니 자리로 돌아가 가쁜 숨을 내쉬며 일갈한다.

"그러니까 포인트는 빠른 동작으로 정확하게 하는 거지."


2시 방향 사자머리를 한 언니는 약 삼십 분 전부터 얼굴을 스커프로 칭칭 둘러매고

테이블 바닥에 얼굴을 파묻어 잠을 자고 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받는다.

언니, 핸드폰은 입에서 살짝 떼고 통화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감전 조심.


오른쪽 3시 방향의 커플은 나란히 노트북을 두 대 놓고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귀에는 무선 헤드셋까지 차서 뭘 그리 열심히 하고 있는 걸까.

슬쩍 엿보니, 메신저... 업무 상담 같은 거겠지.


창밖으론 진눈깨비 같은 눈이 연신 발을 드리우고 있다.

멜랑꼴리한 감성으로 온몸이 충만해진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읊조린다.

'나 우산 가져왔다.'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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