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2008. 1. 10. 15:40
오후 세 시를 가로지르는 신촌의 모 카페.

정면에 손을 포근히 감싸안은 커플은 다정스레 서로를 바라보며 정담을 나누다가

갑작스레 여자가 눈물을 훔친다. 민머리에 가까운 남자는 아마도 휴가 나온 군인인 듯

베이지색 헤링본 코트를 지.독.히도 어색하게 걸쳐 입고 있다.

아직 상병은 안 됐겠지. 그와 그녀에게 축복을.


오른편 소파에 털썩 기대어 앉은 세 명의 그녀들.

함께 모여 갖은 예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 카메라로 셀카를 찍고 사진을 확인하더니

"씨발,  표정 조ㅈ 같이 지었네."

다시 입가를 찢어 방긋 미소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는 조ㅈ 같은 표정 짓지 않았기를.


왼편의 커플은 포크 하나로 티라미스 케익을 쪼개 먹으며 야릇한 눈빛을 보내더니

남자가 그녀 옆으로 건너 앉는다.

이제는 케익 대신 서로의 입술을 맛있게도 냠냠.


11시 방향 노트북을 응시하는 남자는 혼잣말을 자꾸 되뇌며 미소 짓는다.

화상채팅이라도 하고 있나 했더니 갑자기 남자의 무릎팍에서 여자가 고개를 치켜든다.

설마.


2시 방향 남자는 오른손에 펜을 빙그르르 돌리며 뭔가 교재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연신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 눈을 비비다 한숨이 하품으로 바뀐다.

이윽고 스르르 졸음으로 빠져드는 그.

오야스미.


다시 오른편의 세 명의 그네들.

"야 씨발 존나... 지랄 염병... 아가리 닥쳐..."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있어 다행이다.


엿보기, 엿듣기는 이제 그만.

일이나 하자.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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