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표지 때문에 만화가 Y선생과 통화하던 중(엽기적인 만화로 유명한 Y선생과는
지금까지 전화와 메일로만 몇 차례 소통했는데 의외로, 소심하다 느낄 정도로 순하다)
Y선생이 묻는다. "아무개 씨, 원래 출판사에서 일했어요? 얼마나 되셨어요?"
"아, 예. 이 회사는 작년에 들어왔고, 전에도 출판사 다녔습니다."
"아니, 지난번에 보낸 메일도 그렇고… 내가 지금까지 일해본 분들과는 너무 달라서…
만화에 대해 깊이 아는 것 같고… 앞으로 아무개 씨랑 계속 일하게 됐으면 좋겠네요…"
사실 처음 만화책을 맡게 되서 불안하기도 하고, 일도 잘 진척이 안 돼 고민 했었는데
Y선생이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울 따름.
26일 오후
"아무개 씨, 출간 일정 관련해서 잠깐 미팅할까요."
과장이 불러 회의실에서 미팅.
기출간책부터 지금 작업 중인 책, 앞으로 나와야 될 책 등 전반적으로 짚어가며
이야기하는데 내가 방치해둔 것들, 놓치고 있던 것들, 소홀히 하던 것들이 새삼 드러난다.
혼이야 언제나 날 수 있는 거지만, 내가 쥔 아이템들을 내가 감당 못함이 괴롭다.
27일 오전
Y선생이 표지작업분, 6컷을 보내오다. 외부 디자인하는 쪽에 보내줬더니 바로 연락이 온다.
"아무개 씨, 이거 못 써요."
"네?"
"이런 그림으로는 표지 못 만들어요. 다시 그려달라고 하세요. 그러길래 처음부터 표지 컨셉을 잡고
그려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그쪽 디자인실 과장님께 보여드리고 의논해보세요."
디자인실로 가져가 과장에게 보여준다.
"이걸 어떻게 써요. 어떻게 그려달라고 얘기 안 했어요?"
"…예"
이러쿵 저러쿵… 결론은 다시 그려달라는 것. 이 6컷 받는데 3주 걸렸는데…
27일 오후
가슴 속 어딘가서 다서 스멀거리기 시작한 울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