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겨울이라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를 듣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곧잘 듣게 된다.

아니 꼭 <겨울나그네> 뿐만 아니라 요새는 그냥 슈베르트.

어느 클래식광이 내게 했던 얘기가 생각난다.

"슈베르트라, 좋지. 젊을 때 한번 버닝할 만하지."

그럼 나 아직 젊은가.ㅎ 그냥 철 없는 거겠지.


밀어내기다.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1번 Gute Nacht.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피아노에 제랄드 무어라는 희대의 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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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Hitel

2007. 1. 29. 13:48

PC통신 하이텔, `역사 속으로..'



하이텔이 다음달 말로 사라진다고 한다.

하이텔이 전성기가 언제였는지는 잘 모르지만, 90년대 학번, 그러니까 70년생들이면

하이텔이나 천리안, 또는 나우누리와 같은 이른바 PC통신에 대한 나름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내가 처음 하이텔을 써본 것은, 94년 2학기, 학교 교지에 들어가면서 교지에서 쓰던 하이텔 아이디를

공유하게 되면서부터. 그러나 여러 사람이 쓰다보니 낯선 남자로부터 "XX님 어젯밤에는 즐거웠어요~"와 같은

야리꾸리한 귓속말(지금이면 인스턴트 메시지, 이른바 쪽지일텐데 하이텔에선 귓속말이라고 불렀던 듯)이

날라와 95년쯤부터 내 아이디를 만들었다. 그때의 아이디는 1973pin.

사실 하루키의 소설 <1973년의 핀볼>에서 따 1973pinball이라고 입력하라고 했는데 글자 수 제한되는 줄 모르고

치고 입력하고 나니 1973pin이 돼버렸다. 그래서 73년생이냐는 질문을 꽤 받았는데 온라인상에서 부정하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면 "아하~" 이러면서 73년 이전생으로 멋대로들 생각했다.

뭐 불평할 처지도 아니었지만. 각설.

하이텔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건 모 영화동호회.  

이때 만났던 사람들 중에 지금까지 연락되는 이들은 거의 없지만, 가끔 영화판이나 관련 지면을 보다보면

그때의 인물들이 불쑥 튀어나와 미소 짓게 된다(물론 꼴보기 싫은 인간이 조금 더 많긴 하다).

이렇게 영화판을 지향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마니아틱한 인물도 많아서인지

어울리기도 잘 어울렸지만 또 싸움도 꽤 많았던 곳이었다.

한동안은 내가 신촌의 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모여서

하루는 선글라스 끼고 온다거나, 하루는 검정옷을 입고 온다거나 하면서 즐겁게들 놀았다.

입에 담배를 물고 피쳐 갖다주고, 새우깡 더 달라고 하면 봉지 채 던져주면서.

지금 생각하면 그 하이텔의 동호회에 가입하여 놀았던 인물들은

마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제이스 바에 등장인물이라도 된 듯 별로 쿨할 것도 없는 인생들이

쿨한 흉내를 냈던 게 아닐까. 그림 속의 원숭이처럼.

"왼쪽 원숭이가 너고, 오른쪽이 나지. 내가 맥주병을 던지면 네가  술값을 던져 보내는 거야."

하이텔이여 안녕.














Posted by H군
아이들은 자신의 탄생을 신화화한다. 그것은 모든 아이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성이다. 어떤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의 머리와 가슴, 영혼을 이해하고 싶은가? 그가 태어나던 순간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해라. 당신이 듣게 될 이야기는 진실이 아닌 한 편의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편의 이야기보다 더 우리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
-5쪽


나의 불만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진실 그 자체에 대한 것이지요. 지어낸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위안을 주던가요? 굴뚝 위에서 포효하는 곰처럼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밤, 진실이 도움이 되던가요? 침실 벽에 번개가 번쩍거리고 빗줄기가 그 긴 손가라으로 유리창을 두들릴 때는 또 어떤가요? 전혀 쓸모가 없지요. 오싹한 두려움이 침대 위에서 당신을 얼어붙게 만들 때, 살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앙상한 뼈다귀 같은 진실이 당신을 구하러 달려올 거라고 기대하진 않겠지요. 그럴 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이야기의 위안이지요. 거짓말이 주는 아늑함과 포근함 말이에요.
-14쪽


예의를 갖추기란 참으로 쉽지 않나? 특별한 재능이 필요치 않으니까. 다른 모든 것에서 실패했을 때 남아 있는 것이 선함이지.
-68쪽


인생은 회반죽이야. ( )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래. 지금까지의 내 삶, 내가 경험한 모든 일들, 내게 일어난 모든 사건들, 내가 아는 모든 사람, 나의 모든 기억, 꿈, 환상, 내가 읽은 모든 것들. 그 모든 것이 그 반죽 속에 던져졌다네. 시간이 흘러 반죽이 발효했고 결국엔 검고 비옥한 거름이 된 거야. 세포의 분열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 어떤 사람들을 그걸 상상력이라고 부르지. 나는 그것을 반죽이라고 생각한다네. 때때로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나는 그걸 그 거름 위에 심은 다음 기다리지. 나의 생각은, 한때는 생명이 있었던 그 검은 퇴비로부터 양분을 먹고 자라는 거야. 그리고 스스로 힘을 갖게 되면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지. 그러다가 어느 화창한 날, 난 하나의 이야기, 소설을 갖게 되는 거야.
-69~70쪽


다이안 세터필드의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고 있다.
600쪽에 가까운 두께가 부담스럽게 하면서, 책을 펼친 순간 위와 같이, 과실의 생을 응축한 씨앗처럼 조밀하고도 단단한 진술이 어깨죽지에서 날개가 돋아 황홀한 비상으로 이끌 듯이 이야기 속으로 흡입시킨다.
그래, 이게 처녀작이란 말이지, 하고 반은 감탄하고, 반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나에게 <열세 번째 이야기>는 무슨 상관이람  하고 아랑곳않는다는 듯 도도하게 책상 위에서 놓여 있다.
알았어, 얼른 다 읽을께.







SCHUBERT: Piano Sonata No. 21 in B flat major D. 960 Andante sostenuto
Piano_ Sviatoslav Richter





Posted by H군

작년 초니까 꽤 지난 이야기지만, 일본 아마존을 보다가 눈에 띄는 책이 있어

대충 내용소개와 독자평을 정리하여 위에 올렸더니, 특히 사장이 그 책이 꽤나 마음에 든 듯,

얼른 구해보라 하여 특급으로 받아 보여줬다.

일반인보다 10배나 빨리 늙어 평균수명이 13세라는 조기노화증 환자인 열네 살 소녀가,

항상 죽음을 예비해야 하는 상황임에도 너무나 밝고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본인의 삶을 쓴 책.

나이가 나이다보니 내용도 쉽고, 분량도 꽤 짧다.

사장이 책을 이리저리 흝어보더니, 나 주말에 이 책 읽고 싶은데, 란다.

그러니까 나보고 번역을 해서 주라는 말씀.

하여 급하게 책을 번역하게 됐는데, 이게 참, 문장은 참으로  쉬운데 그 내용이 너무나 밝고 건강하여

번역하면서도 마음이 영 불편하다. 게다가 14살 소녀적 감수성을 담으려니 더욱.

예컨대 다음과 같은 문장.


전 다른 사람들 앞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아요.
제가 웃고 있으면 모두가 행복해지는걸요.

차를 타고 갈 때, 거리를 걸어갈 때, 저를 신기하게 쳐다볼 때면
짜증내지 않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여요.
그러면 그 순간 그 사람도 제게 웃음을 지어줘요.
 



이런 표현을 옮겨 치면서 속이 니글니글거려 참 힘들다.

이 불건전하고 타락한 속물인 나라는 인간이 이런 글을 읽고 옮긴다는 건 참으로 곤욕스러웠다,

라고 아까 점심 먹으며 누군가가 그 책의 행방에 대해 물어 갑자기 든 생각.

어쨌든 그 소녀가 아직까지 건강하고 밝고 살아가고 있기를!


*사실 다큐멘터리로 먼저 만들어져 굉장한 반향을 일으켰는데 방송국과 판권이 복잡하게 걸쳐 있어

책은 국내에 나오기 힘들 듯. 뻘짓을 한게다.

*제목은 하루키의 <무라카미 아사히도는 어떻게 단련되는가>에 실린 '취미로서의 번역'에서.








Posted by H군

무릎 통증

2007. 1. 25. 09:00
작년 10월 혹자가 일컬은 크레이지 등산 이후, 무릎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였다.

운동을 조금 무리하게 했다 싶거나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무릎 양쪽 사이드부위가

아파서 새벽에 깰 정도. 걷는 것도 불편해 특히 계단 내려갈 때면 절뚝절뚝.

그런데 웃긴 것은 오후쯤 되면 괜찮아지면서 저녁이 되면 언제 아팠냐는 듯 멀쩡해진다.

그리고 다시 운동을 하고 나면 반대쪽 무릎에 똑같은 통증.

이런 증세가 몇 달간 반복적으로 나타나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정형외과에 갔더니

무릎을 돌리고 구부리고 만지작거리더니만 아무 이상 없단다.

아니, 저기 제가 아파서 새벽에 깨날 정도라고요, 라고 얘기해도 괜찮단다.

그 아픈 부위가 운동 무리하면 염증이 생길 수 있는 부위라고. 술 먹으면 더 자극되고.

MRI 찍으라 하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X레이도 안 찍고 약도, 파스 한 장도 없다.

내심 마음이 놓이면서도 뭔가 납득이 안 된다.

그래서 달리는 의사회에 소속된 의사가 답해주는 모 사이트에 내 정황을 써놓고 어쩌면 좋냐 물어봤더니

다음과 같이 답을 해준다.



계속 걷기만 하셨더라도 현재의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을까 싶네요.
거의 가벼운 조깅 속도로 걸으시는데, 빠른 걷기 때는 정상적인 걷기의 자세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달리기보다 더 많은 열량이 소모되고,
그만큼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일단 걷기 속도를 5km 정도로 낮춰서 현재 하시는데로 한번 해보시지요.
아마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이제 뭔가 알 듯하다. 뛰려면 제대로 뛰고, 걷고 싶으면 천천히 걸어라.

퇴행성 관절염이 아니냐며 비아냥댔던 인간들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확 우겨버린다.
Posted by H군

10년 정도 되지 않았을까, 경마장에 마지막으로 간 것은.

하일지의 <경마장 가는 길>을 오늘의 책에서 산 것은 95년, 놀이하는 사람들에서 알바하던 무렵이었고

'경마장'을 마지막으로 간 것은, 97년쯤?

그리고 지난 주말 만 10년이 지나 경마장에 다시 가다.

같이 간 일본 언니는 심지어 경마장이 있는 도시에서 살고 있다면서

(경마장이 있는 도시는 세금도 싸요, 라고 일러주면서) 경마장은 난생 처음이란다.

그런데 하 오랫만에 왔더니 베팅 거는 방식이 전혀 생각이 안 난다.

1층에서 헤매니 경마 안내소라는 곳이 있고 거기에 팜플렛이 있다.

그걸 보고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 복역승식 등이 있다는 걸 새삼 기억해내다.

전광판에 나와 있는 배당률을 확인하면서 배당률이 낮은 말(그러니까 가장 인기 좋은 말)을 중심으로

대충 조합하여 복연승식으로 베팅.

세 게임에 삼천 원씩 투자하여 1만 원 정도의 수익(일본 언니는 이천 원씩 투자하여 800원 마이너스).



친구 중에 어머니가 제주도 조랑말 경마에 빠지시면서 재산을 다 날리고

부도가 나서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게 된 놈이 있다.

그런 엄마가 미웠고, 경마가 미웠던 그 친구랑 97년도에 경마장에 왔었다.

대학생이던 우리는 기껏 천 원, 이천 원 정도 걸고 있는데 그놈은 만 원, 이만 원 그냥 내지른다.

그리고 경마장을 나서며 그 친구가 뭔가 통달했다는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말한다.

"이제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나 다음주에도 또 경마장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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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군

백건우가 올 12월에 베토벤 소타나 전곡에 도전한다고 한다.
7일간에 걸쳐 8회 공연.
가격도 꽤나 괜찮다. 지금 예약하면 50% 할인.
이거 사뒀다가 놔두면 재테크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
문제는 과연 몇 번이나 가게 될 것이냐는 점과 설령 갔다한들 그걸 다 견딜 수 있을까 하는 점.
8회 공연이니까 각 4곡씩이 될려나.
여튼 관심 있는 분은 연락주셈.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회

 Beethoven Club

 

 2007 Kun Woo Paik Beethoven Piano Sonata Cycle

 

 

건반 위의 시인 피아니스트 백건우 대한민국 클래식 역사상 최초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7 동안 연속으로 완주합니다.

마치 구도자가 성지를 찾아 다니듯 연주 인생 40 동안 항상 치열한 탐구 정신으로  작곡가, 혹은 하나의 작품을 선택하면 “몰아치듯철저히 파고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그간 보통의 연주자들은 시도조차 꺼리는 전곡 연주의 길을 고집하던 그가 마침내 2007년에는 피아노 소나타의 신약 성서라   있는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7일간(8) 완주하는 역사적인 전곡 연주회를 준비합니다.

 

클럽발코니는 2007 1 22, 백건우 베토벤대장정에 동참할 공식 서포터즈 <베토벤 클럽> 모집합니다. <베토벤 클럽>, 2007 12 백건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연주(7일간 8) 파격적인 50%할인가로 관람할  있는 티켓과 2007 베토벤 다이어리, 스페셜 베토벤 프로그램 등이 포함되어 베토벤을 좋아하고 백건우 응원하는 팬들에게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찬 2007년을 선사할 것입니다.

선착순 600석 한정판매로 좋은 좌석을 미리 선점하실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의 잊을  없는 베토벤과의 만남!  1 전에 미리 예약하세요.

  

일시 : 2007년 12월 8일(토)~14일(금) 7일간 8회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프로그램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
티켓 :  R석 5만원,  S석 3만원,  A석 2만원

R석 5만원 * 8회 = 40만원 --> 20만원

S석 3만원 * 8회 = 24만원 --> 12만원
A석 2만원 * 8회 = 16만원 --> 8만원

TICKET OPEN: 2007년 1월 22일 오후 2시

 

 

 

 

 







 

Posted by H군

시사모

2007. 1. 18. 17:29
지난번에도 한 번 올린 적이 있고, 다들 별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올려본다.
혹시나 자세한 정황은 알고 싶으시면 시사모(
http://www.sisalove.com/)에 들어가서 읽어보시길.


[고종석 칼럼] '시사저널'사태가 무서운 까닭


지난해 6월 한 재벌회사 관련 기사가 발행인의 지시로 인쇄 직전에 삭제된 데서 비롯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태가 황당한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기사가 빠진 데 항의해 편집국장이 낸 사표는 즉시 수리됐고, 기사 삭제와 편집국장 사표 수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이 직무정지나 대기발령 같은 중징계를 줄줄이 받은 데 이어, 경영진은 노동쟁의의 와중에 대체 인력을 투입해 기자들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잡지를 지난주에 이어 두 호째 내 놓았다.
 

▲ 1월18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고종석 칼럼

노동쟁의 와중에 대체인력 투입 제작

반년 이상을 끌어오다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완전한 대체인력에 의한 제작'이라는 살풍경을(차라리 '진풍경'을) 빚은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해졌음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러나 자본의 욱일승천 자체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판단을 이 자리에서 내리고 싶진 않다.

한 사회의 모든 가치와 동력이 자본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특정한 개개인의 욕망이나 윤리를 떠나서 한국사의(어쩌면 세계사의) 현단계가 짜낸 구조나 '대세'의 문제일 테다. 또 이 사태의 핵심이라 할 편집권의 귀속 문제나 대체인력 투입의 위법성(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43조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위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과 관련해 채용, 대체, 도급,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에 대해서도 시비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 언론의 편집권은, 시사저널 경영진이 주장하듯, 최종적으로 발행인에게 속할지도 모른다. 또 지금 시사저널 제작에 투입된 외부인력을 이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라 우겨 말한다면, 이 잡지사 경영진은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사저널 경영진의 입장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이해해준다 할지라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그들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반년 이상 경영진이 보여준 행태가, 위법 여부를 떠나, 몰상식해서다.

편집국장 몰래 인쇄소에서 기사를 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몰상식했고,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을 줄줄이 중징계 처분한 것이 몰상식했고, 급기야 노조가 파업을 하자 다른 언론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필자들을 동원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잡지를 내놓은 것이 몰상식했다. 말하자면, 이 사태 내내 시사저널 경영진이 기자들과 맞선 방식에는 기품이 없었다.

지난주와 이번 주 시사저널은 그간 정파적 치우침 없이 시시비비에 공정했던 이 잡지에 강한 정파성의 너울을 씌웠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짝퉁'이라고 부르는 이 두 호 기사들의 본질적 문제는 그 논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품 없음'에 있다.

기실 한국의 소위 주류 저널리즘이 민주화 이후 드러내고 있는 구접스러움도 그 논조에 앞서서 그 언어의 기품 없음에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게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권 홍보담당자들의 기품 없는 언어는 주류 저널리즘의 기품 없는 언어가 거울 저편에 만들어놓은 짝패인지도 모른다.

지난주와 이번 주의 시사저널은 그간 논조의 공정함에 더해 언어의 기품까지 보여주었던 이 잡지의 역사에서 큰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들의 기품 없음은 경영진이 이번 사태에 대처해온 방식의 기품 없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품 없는 저널리즘 언어가 더 섬뜩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주와 이번 주 잡지를 '짝퉁 시사저널'이라 부를 때, 거기선 얼마간의 경멸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 '대체 시사저널'이 경멸스럽다기보다 무섭다.

이 두 호는 미국 작가 잭 피니의 SF스릴러 소설 <바디 스내처>(1955)에 나오는, 인류의 신체를 취해 지구에 번식하는 외계생물을 섬뜩하게 연상시킨다. 껍데기는 영락없는 시사저널이지만 속은 '스내처(강탈자)'의 것인 이 '가짜 시사저널'이 힘겹게 저널리즘의 기품을 견지하고 있는 몇몇 매체들마저 감염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서명숙이 만난 김훈 ,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오늘,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어젯밤 김훈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칼의 노래>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시사저널 후배들에게는 그저 편집국장을 지낸 선배이지요). “<짝퉁 시사저널>이 나왔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더군요. 컴퓨터를 배격하는 아날로그적인 양반이라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을 보지는 않았는데 어떤 매체의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구요. 오피스텔에 칩거해 글만 쓰느라고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왜 미리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서운해 하시더군요.

오늘 일산 김선배 집 앞 커피숍에서 <시사저널>에서 한철을 보냈던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낮 12시에 만나서 오후5시30분이 되어서야 헤어졌습니다. 긴긴 시간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요. 아, 저는 물론 술은 아니 마셨습니다. 1월1일에 술을 끊기로 결심했으니까요(타이밍 한번 정말 잘못 잡았습니다).

김선배는 아직 <시사저널>899호는 받아보지 못했더군요. 오늘 집에 가면 와 있을 거라구요. 그러나 주변의 전언으로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퇴기(퇴직한 기자의 줄임말)’는 여기 일일이 옮겨적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새벽까지 마감하고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해장하고 아침해를 보면서 퇴근했던 일, ‘청와대 밀가루 북송사건’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고소를 당해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일, 한 주 걸러 한번씩 고소장을 받아들던 일, 그보다 더 자주 언론중재위에 불려갔던 일, 걸핏 하면 사표 쓰고 칩거한 김선배의 뒷감당을  하느라 후배들이 애먹었던 일.

그러다가 김선배의 눈에 물기가 비치더군요. “내 청춘을 바친 잡지인데, 후배들이 그 어려운 시기도 넘기면서 지켜온 제호인데‘’‘” 말을 채 잇지 못하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너무 울어서 더는 울고 싶지 않았던지라 퉁명스레 맞받아쳤지요. “청춘은 무슨 청춘, 선배는 이미 한물 간 나이였어요. 30대인 우리가 청춘의 절정이었죠.”

김선배는 계속 우기더군요. 자기도 청춘이었다구요. 나이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청년이었던 것만큼은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김선배는 말하더군요. 편집국장하면서 굉장히 편했다구요. 실무는 몽땅 후배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편집국을 공격하는 외적만 방어했노라고.

‘외적만’이라고 김선배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외적의 출몰이 좀 잦았던가요.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적인 잔재가 남아 있던지라 청와대,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검찰 에서부터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문제를 까발린 기사에 대해 가만놔두지 않겠다고 으름장 놓는 곳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문 방송이라는 거대한 보호막도 없는 자그마한 독립매체가 어지간히도 까불었던 셈입니다.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

술기운 탓인지 김선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 시사저널에 정신적인 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당신들도 다 마찬가지고.” 심각해지기 싫어서 ‘뼈는 몰라도 연필이랑 지우개는 많이 갈아바쳤죠’라고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원고지에 연필로 데스크 컬럼을 써내려갔던 김훈 선배는 책상 주변에 지우개똥을 어지간히도 흘려놓곤 했었으니까요).

‘짝퉁 시사저널’로 화제가 옮겨가자 김선배는 비통해했습니다. 수많은 정기구독자를 생각하면 결호를 내서도 안되지만, ‘짝퉁’도 말이 안되는 일이라구요. 생각만 해도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구요. 시사저널은 단순한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재산인데, 그런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푸르른 청춘과 뼈를 갈아바쳤는데, 그런 매체가 한번 세상에 나와 착근하려면 십년 이십년도 더 걸릴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라구요. 이건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능욕이라구요.

옆에 있던 또다른 퇴기가 말했지요. 우리가 이럴진대 거기 몸담은 후배들은 짝퉁 시사저널을 보면서 얼마나 괴롭고 모멸스러웠겠냐구요. 젊은 후배들 중에는 잡지 만드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아서 아예 집에도 안 들어가는 놈들도 있다구요. 김선배가 되묻더군요. "야, 정말 그러냐. 고놈들, 정말 이쁘다. 언제 술이나 사줘야겠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급기야 김선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설 때 “소설가 김훈 선생님 아니냐?”고 반색하며 맞았던 여주인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구요(다 늙은, 또 늙어가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울다 웃다 하는 희한한 풍경을 어찌 받아들일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김선배는 시사저널의 오늘을 있게 만든 건 소유주도, 전현직 기자도 아닌 독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독자들에게 지금의 사태는 너무도 면목없고 미안한 일이고(잘잘못이 어디에 있던 간에), 하루 빨리 진품 시사저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게 오늘 술자리의 결론이었지요.

그러니 사태 해결을 위해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해보자고요.

오늘날 시사저널 사태가 파행으로 치달은 원인이 편집권은 사주나 발행인 개인의 것이 아닌 편집국 구성원의 이성의 산물이라고 믿으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온 <시사저널>의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후배들과 새로운 발행인과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그런 전통을 만들어낸 선배들 역시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이니까요.

마음만큼이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허허벌판 일산에서 ‘퇴기’ 출신 원고 노동자-한명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나머지 둘은 별볼일없는 프리랜서였지만요-셋은 ‘주민등록주소지’인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돌아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친정어머니가 말하시더군요. “야, 군대서 옷 왔다.” “어머, 그래요?” “근데, 뭐 학사경고장인가 하는 것도 왔더라.”

‘군대에 온 옷’은 1월2일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한 큰애가 집으로 부쳐온 사제 옷이고, ‘학사경고장’은 큰애가 다니는 대학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아, 큰애가 한창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김선배가 얘기했듯이 ‘뼈를 갈아’ 잡지를 만드느라 아이를 방치했고, 심지어는 ‘악마의 빚독촉 같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매체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 때문에 주중에는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왔었지요.

안팎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셨겠지요.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한 잔, 아들 때문에 한 잔!

그러나 금연하면서 깨달은 진실은 담배가 풀리지 않는 원고를 대신 써주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들 역시 한잔 술이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내 청춘을 실어보낸 <시사저널>이 지금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내 마음의 빚인 큰아이가 제 갈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금창태 "'짝퉁' 시사저널 보도에 명예훼손 소송"
"왜곡 주장 때문에 이념적 세력의 공격목표 돼"
등록일자 : 2007년 01 월 17 일 (수) 11 : 17  
 

  지난 5일부터 기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시사저널>금창태 사장이 16일 "<오마이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왜곡된 글을 올린 서명숙 씨 등 네티즌들에 대해 명예훼손과 민사배상 청구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기자협회보>가 지난 9일 발간된 899호 시사저널을 '짝퉁 <시사저널>'로 표현한 데 대해서도 추가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했던 금 사장은 그 후 노동조합의 '편집권 독립 보장' 요구를 거절하며 단체협상을 결렬시켰다. 또 12월에는 현직 기자수와 맞먹는 취재, 사진, 미술분야의 편집위원 16명을 대거 위촉해 파업에 대비한 준비를 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금 사장은 지난 899호부터 편집위원 및 외부 인사들의 글로 채워진 <시사저널>을 발행 중이다.
 
  "이 기사 빠지더라도 이해해달라 얘기했는데…"
 
  금 사장은 이날 <시사저널> 기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www.sisalove.com)의 홈페이지에 '시사저널 사태의 진실을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송 절차와 경위를 밝혔다.
 
  그는 "이번 사태를 <시사저널> 내부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했다"며 "다만 이미 다 알다시피 노동단체기관지 및 일부 경향성을 가진 시민단체 기관지들, 인터넷을 비롯한 군소 유사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검증 없이 다룸으로써 저 자신이 일부 이념적 세력의 공격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 사장은 같은 글에서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삼성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한 나름의 경위를 밝혔다.
 
  그는 "(당시)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고 더 검증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그때 가서 결정하자고 했고 취재기자를 불러서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인간적으로 부탁도 했다"며 "내가 S그룹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고 000 부회장에게 업무상 신세를 많이 졌고 후배다. 그러니 이 기사가 빠지더라고 이해해달라고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사를 빼고 나서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기협회장에게 알리고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기협 대표들과 만나 경위 설명을 했고 간부들에게 이 사태를 설명하겠으니 내 방으로 오라고 했으나 안 왔다"며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이윤삼 편집국장은 편집국에 작별인사를 한 뒤 제 방에 와서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그 후 기자협회에서는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대자보를 붙이고 아침마다 제 방에 와서 데모를 하고 일부 매체에서는 저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다음에 시사저널과 저에 대한 인신공격, 명예훼손을 시킨 언론매체와 외부세력에 대해 저의 모든 명예를 걸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사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사장으로서 이런 사태를 빚게 된 데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한다. 시사저널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외부세력의 불순한 의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릴레이 선언 이어질 것"
 
  금 사장은 이미 지난해 6월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된 편집장 칼럼을 쓴 <한겨레21>에 대해 민·형사 고소를 제기했으며, 관련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에 대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 지난 9일 <시사저널>의 고재열 기자가 기자들의 불참 속에 발행된 899호에 대한 품평기를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자 '해사 행위'를 했다며 지난 1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심의했다.
 
  <시사저널>의 한 기자는 "금 사장이 계속 법적대응에 들어가면 시사모 회원들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899호부터 시사저널은 '짝퉁'이라는 릴레이 선언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모'는 오는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사저널 살리기 문화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이날 공연에는 가수
손병휘, 전인권, 인디밴드 허클베리 핀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강이현/기자





나도 부기해놓는다.

시사저널 899호, 900라고 감히 명명된 잡지는 '짝퉁 시사저널'이다 라고 저도 정확히 발언합니다.
저도 고소하시지요

Posted by H군
코캐인에서 술을 마시면서 예전부터 일 돕는 분 보면서 왠지 낯이 익다고 느꼈었다.

그러다 그 분이 인도 다녀왔었다는 얘기가 생각나 시기와 지역을 맞춰보니

그 분도 2005년에 8개월간 인도에 있었고, 특히 다람살라의 한국카페 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그러니까 내가 다람살라에서 리 카페 드나들 때 계셨던 것.

말하다보니 인도에서 봤던 몇 안 되는 한국사람들 중에도 겹쳐 아는 이도 나온다.

한국은 이렇게도 좁구나, 라고 붐붐에게 얘기했더니

붐붐 왈, "그게 아니고 니가 아는 여자가 많은 거여" 란다.

이하 붐붐과 H군의 대화.



H군 님의 말 :
'아는 여자'라는 범주가 스쳐지나가며 얼굴 본 여자까지 포함한다면...ㅎ
H군 님의 말 :
글고 혹 아는 여자 많다한들 인생에 별 영양가는 업구나ㅎ
BoomBoom 님의 말 :
그거야 네놈이 작업을 안하는 탓이지
H군 님의 말 :
작업도 대상에 대한 욕구가 생겨야 하지
BoomBoom 님의 말 :
넌 안생기는 게 문제야
H군 님의 말 :
아니 불특정으로는 많이 생겨ㅎ
H군 님의 말 :
근데 그 사람들은 '모르는 여자'라서 문제지
BoomBoom 님의 말 :
ㅎㅎ







결론은, 모르는 여자를 아는 여자로 만들자인가. 이런 제길슨.




Posted by H군
주말 구례에 다녀오다.

이른바 김연식이라 불리는 성은 형, 연주 누나 부처에 은식 형과 함께 토요일 구례로 출발.

성은 형의 차를 타고 7시가 좀 지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점심 무렵 구례 도착.

사성암 올라가기 전 4dr선배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

("점심 안 먹어도 되나?"
"김밥이나 사들고 올라가죠."
"구례 와서 김밥을 먹겠다고? 그럼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으면 되겠네."
"음. 노래방도 가야할까요. 야식으로 치킨 시켜먹어도 될 듯합니다.")

사성암은 지난여름, 우로형이 암자 바로 밑까지 차 타고 올라가 20여 분을 사투 끝에

무산소 등정에서 성공했던 해발 531m 오산에 있는 암자.

이번에는 아래에서부터 등산로를 타고 김연식과 언화 누나와 함께 등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데 등산로가 가팔라서 마냥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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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마치고 평화식당에서 육회 비빔밥으로 곡기를 채우다.

이곳 육회에 대한 글과 사진은 구례 1 포스트 참조.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애매하여 4dr 선배의 인도 하에 하동까지 드라이브.

포장마차 재첩국수 집에서 따뜻한 머위 차를 마시며 한담.

("오늘 저녁에 진짜 삼겹살 먹나?"
"예전에 우리 여관에서 치킨 시켜먹었던 곳이 구례 아니었나?"
"맞다. 진짜 구례에서 치킨 시켜먹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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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로 돌아와 여관에 짐을 풀고 월성정육점에서 육회를 2만 4천 원어치 끊어

4dr 선배에게 기름장을 얻고(거기에 갓김치까지 주시다) 여관에서 진탕 술을 마시다.

지난 번 잠수함 님과 왔을 때 서강정육점에서 끊어 먹었던 육회와 비교하자면

월성의 것이 조금 더 신선하다. 그리고 서강보다 얇게 썰어 술 안주로 먹기에 더 편하다.

육회와 마른 문어를 안주 삼아 소주 8병, 맥주 피처 3병을 비우다.

5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12시쯤 먼저 뻗고 기억이 없다. 증언에 따르자면 이후 30분 내로 모두 쓰러졌다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음날 아침, 목화식당에서 해장. 뜨거운 선지를 넘기다가 목을 데다. 증세는 인후염과 거의 별반 없다.

돌아가는 길, 성은 형 내내 육회를 추억하다.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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