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니며 개근상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게 은근한 자랑이랄까,
내 우악스러운 인상 안에도 콜록콜록 기침을 토하면서도 시몬, 너는 아느냐를 읊어대는
결핵 걸린 문학소년과 같은 감수성 같은 게 숨어 있다는 걸
우길 수 있는 유일무이한 증거 같은 거라고 멋대로 상상해왔다고 할까.
그런데 얼마 전 고향에 내려갔다가 집에 있는 상장들(들입니다, 네, 들이라고요, 호호호)을 훑어보다가
개근상장을 발견하고 말았다, 허걱.
그래, 생각해보면 나는 조퇴 전문가였다.
부모님 앞에서 학교는 나가고, 선생님의 허락 하에 조퇴를 하여 알아서 노는 스타일.
사실 꾀병이라 하면 또 나름 일가견이 있다. 꾀병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우선 지각을 않는다고 중요하다.
이는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도 공히 통용된다.
'아파도 학교(회사)에는 꼭 나오는 사람'이란 이미지를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지각을 않고, 심지어 일찍 나와서 관중 - 아프다고 증언해줄 사람과 그 아픔을 조퇴로 허락해줄 사람-이
등장하면서부터 꾀병을 부리기 시작하여...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각설, 어쨌든 개근상도 우연찮게 받았지만 학교에서 지내기는 무지 싫어했던 아빠.
(참고로 엄마는 전 학년 개근상장에, 학교를 참 좋아했단다).
용재는 어떨까.
그래도 엄마아빠는 나름 합의봤다.
학교 가기 싫음, 가지 말라고.
아빠는 잔머리 굴리며 학교에서 도망쳐지만, 넌 안 그래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