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2007. 5. 16. 08:51

올해 5.18 광주항쟁 기념 백일장에서 열여덟의 고등학생 소녀가 쓴 시란다.


그 날

정민경

나가 자전거 끌고잉 출근허고 있었시야

근디 갑재기 어떤 놈이 떡 하니 뒤에 올라 타블더라고. 난 뉘요 혔더니, 고 어린 놈이 같이 좀 갑시다 허잖어. 가잔께 갔재. 가다본께 누가 뒤에서 자꾸 부르는 거 같어. 그랴서 멈췄재. 근디 내 뒤에 고놈이 갑시다 갑시다 그라데. 아까부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어른한티 말을 놓는거이 우째 생겨먹은 놈인가 볼라고 뒤엘 봤시야. 근디 눈물 반 콧물 반 된 고놈 얼굴보담도 저짝에 총구녕이 먼저 뵈데.

총구녕이 점점 가까이와. 아따 지금 생각혀도...... 그땐 참말 오줌 지릴 뻔 했시야. 그때 나가 떤건지 나 옷자락 붙든 고놈이 떤건지 암튼 겁나 떨려불데. 고놈이 목이 다 쇠갔고 갑시다 갑시다 그라는데잉 발이 안떨어져브냐. 총구녕이 날 쿡 찔러. 무슨 관계요? 하는디 말이 안나와. 근디 내 뒤에 고놈이 얼굴이 허어애 갔고서는 우리 사촌 형님이오 허드랑께. 아깐 떨어지도 않던 나 입에서 아니오 요 말이 떡 나오데.

고놈은 총구녕이 델꼬가고, 난 뒤도 안돌아보고 허벌나게 달렸쟤. 심장이 쿵쾅쿵쾅 허더라고. 저 짝 언덕까정 달려 가 그쟈서 뒤를 본께 아까 고놈이 교복을 입고있데. 어린놈이.....

그라고 보내놓고 나가 테레비도 안보고야, 라디오도 안틀었시야. 근디 맨날 매칠이 지나도 누가 자꼬 뒤에서 갑시다 갑시다 해브냐.

아직꺼정 고놈 뒷모습이 그라고 아른거린다잉......


오마이뉴스 기사 참조


Posted by H군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두 달 전, 궁핍과 병마에 시달리며 클라리넷 연주자 안톤 슈타틀러의 의뢰로

씌어졌다 라고 하는 이 곡에, 그 처참한 개인 모차르트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건듯건듯 불어오는 봄(이냐, 여름이냐!?) 바람과 어울리는 듯.

온다 리쿠는 그랬다, <황혼녘 백합의 뼈>에서,

행복이란 것은 얼마나 그로테스크한가.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은 그로테스크한 행복감으로 고양되는 곡인 것 같다.


MOZART: Clarinet Concerto in A major KV 622
Leopold Wlach_clarinet
Artur Rodzinski_conductor
Vienna State Opera Orchestra




Posted by H군

어떤 책은 그 내용보다 책을 읽었던 당시의 풍경으로 기억된다.

예컨대 <그리스인 조르바>라고 한다면 두 번의 기억의 풍경이 떠오른다.

대학교 1학년 여름 어느날, 싸구려 캘리포니아 와인과 오미자 엑기스를 섞어 얼음을 띄운

정체불명의 음료를 마시며 책장에 붉은 얼룩을 자꾸만 남겼던 기억 하나.

그리고 인도 맥그로드 간즈의 스님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낮에,

한국인 카페 리에서 빌린 <조르바>를 꺼내 읽고 있는데

갑자기 게스트하우스를 울리는 여인의 끝없는 절창,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 그 기억.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역시 열댓번은 되풀이 읽었겠지만,

그 책을 떠올리면 고등학교 미술실에서 테레핀유와 담배 연기가 섞인 냄새,

심야 고속버스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헤드폰에 울리는 캐논볼 애덜리의 색소폰...

그리고 인도에서 어떤 풍경이 찾아든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묘하게 짠맛이 섞인 아이스커피를 홀짝이며

인도에서 그것을 말아 피며 책을 보다가 어느 순간 멍해지며 나른하게 릴랙스되는 가운데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만년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예전 인도 여행을 갈무리한 걸 뒤져보니 그 카페 테라스에서 찍은 사진이 있다)


이렇게 기억의 풍경을 검색하다보면

하루키가 말한 먼북소리가 들려와 긴 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앞으로 21개월.


Posted by H군

도서문답

2007. 5. 7. 10:55

모모깡 님께 받은 바톤.


평안히 지내셨습니까?
기침감기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는 걸 말고는
그냥저냥.


독서 좋아하시는 지요?
술과 담배만큼

그 이유를 물어 보아도 되겠지요?
화장실에있을 때, 차 타고 이동할 때, 걸어갈 때,  밥 먹을 때 등
하루의 틈새시간을 채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라서.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나요?
만화책과 잡지는 빼고, 적게는 5권, 많게는 열댓 권.

주로 읽는 책은 어떤 것인가요?
일과 관련해서 거의 일본소설들. 장르는 미스터리.
읽는 권수로만 따지면 만화책.

당신은 책을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한낱, 기껏, 고작 책.

당신은 독서를 한 마디로 무엇이라고 정의하나요?
시간 때우기.

한국은 독서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다른 시간 때울 것들이 많아서.

책을 하나만 추천 하시죠? 무엇이든 상관 없습니다.
나는 알고 있다 이것만은 진실임을/월리 램/대산

그 책을 추천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릇 이야기란 이정도의 볼륨(원고지 매수까지 포함하여)은 갖춰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
게다가 해피엔딩이다. 네 번 읽으며 항상 울었고, 항상 위무받았다.

만화책도 책이라고 여기시나요?
책장에 꽂혀 있으니 책이다.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비 문학을 더 많이 읽나요?
거의 소설과 만화만 읽는다. 비문학으로는 매주 보는 필름2.0과 스포츠2.0이 유일한 듯.

판타지와 무협지는 "소비문학"이라는 장르로 분류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비문학이 아닌 문학, 아니 책 자체가 존재할 수 있나?

당신은 한 번이라도 책의 작가가 되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없다.

만약 그런 적이 있다면 그때의 기분은 어떻던가요?
그런 적은 없지만, 디게 잘난척하고 싶을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누구입니까?
기리노 나쓰오, 온다 리쿠, 미야베 미유키, 다카무라 가오루

좋아하는 작가에게 한 말씀 하시죠?
여사님의 정부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 이 문답의 바톤을 넘기실 분들을 선택하세요. 5명 이상, 단 "아무나"는 안됩니다.
알라딘의 물만두님,  namu님, 체셔고양2님.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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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 어제 이틀간 무알콜 무니코틴.

담배에 대한 유혹은 의외로 덜한데, 어제는 가볍게 운동하고 집에 들어가

소파에 기대 황금어장 보고 있는데, 역시 맥주가 땡긴다.

아껴놓았던 하이트프라임 한 캔을 테이블에 떡 얹어놓고 몇십 번을 마실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다시 냉장고에 갖다뒀다.

내일 저녁에는 술약속이 있어 어차피 깨지겠지만 그전까지 술과 담배를 안하고 있으면

근래 몇 년간 나름 기념비적인 기간이 아닐까 싶은.


Posted by H군

주말 근황

2007. 4. 30. 14:40

27일
오후 3시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야 해서 정말 드물게 오전에 열심히 일하다.
나답지 않게 너무 열심히 해서 점심 전까지 마칠려고 했던 것이 10시 반에 끝나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했더니 역시 딴 일이 생긴다.
역시 열심히 일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얻고 공항행.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그대로 두기>를 다 읽고, 공항에서 대기하고,
제주도로 내려가는 동안 <리얼월드>를 읽다.
제사 준비를 거들다가 7시부터 집에서 추모예배.
다행히 회사에서 전화가 와서 딴방에 들어가 숨어 있다가 예배 끝날 때쯤 나오다.
평소대로라면 이때부터 술판이 길게 이어지는데 다들 컨디션이 별로인지 일찍 끝나다.
내가 지독하게 기침하고 있는 꼴을 보여줬더니 내게도 술을 권하지 않는다.


28일

오야지 모시고 인천의 7촌 조카 결혼식.
말이야 나한테 7촌뻘 조카라고 하지만 얼굴은 처음 봤다.
오야지는 자기가 지 아들 결혼도 안했는데 손자 결혼하는 꼴 봐야하냐며 연신 타박.
게다가 2살 위 사촌 형도 올해 10월에 결혼한다며 배신을 때리다.
점점 친척들 만나는 자리가 곤욕이 되어간다.
식이 끝나고 검단이라고 하는 왠지 세상의 끝 분위기가 나는 곳에 있는 6촌형 집에 가서 식사.
나름 손님 대접한다고 대게를 왕창 삶아왔지만, 내게는 그림의 떡.
혹시나 맛날까 싶어 좀 집어 먹어봤지만 역시 맛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함께 나온 백합탕은 꽤나 맛있다.
순전히 백합 삶은 국물에 소금으로만 간을 한 것인데, 역시 한꺼번에 많이 끓이니
재료의 맛이 듬뿍 담겨 있다.
그곳에서 다시 오야지와 누이 가족들과 함께 천안 누이 집으로.
천안 가서 맥주 한두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밤새 기침하느라 자는둥 마는둥.


29일

금요일 쓸데없이 열심히 일을 해서 오후에 남긴 일을 하기 위해 회사로.
오전 10시에 천안에서 출발했는데 회사에 도착하니 12시 반.
그러고 보니 어제 결혼식 참석 하느라 정장차림이었는데
정장 입고 회사 출근하기는 처음. 그리고 마지막이어야 할게다.
저녁까지 일하다가 집에 들어와 맥주 한 캔 마시고 잠들다.
그러나 역시 새벽에 터지는 기침.
약이라도 사먹야겠다.




Posted by H군

럭키 걸

2007. 4. 2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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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회사로 와서 내는 첫 책.
작년 여름부터 시리즈 기획에 참여하기 시작해서 한 발을 담갔다가
결국 이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자리까지 옮긴 시리즈의 첫 주자다.
월요일이면 손에 쥘 수 있고, 다음주 중이면 시중에 배포될 듯.
짧은 편집자 생활 기간 동안 그래도 제법의 책을 만들어왔지만
이 시리즈의 첫 책이 나온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유다르게 다가온다.

Posted by H군

??

2007. 4. 25. 17:42

알라딘을 보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가 존경하는 거장'이라는 롤링 광고가 뜨길래

뭔가 봤더니 다자이 오사무의 산문집이다.

바나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다자이 오사무를 존경해??

흠. 대체 어디서 근거한 얘기일까.

하루키가 어느 에세이에서인지 자기는 사소설 알레르기가 있다고 한 것 같은데,

다자이 오사무하면 또 사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이고.

<그래, 무라카미 씨에게 물어보자>라는 하루키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들이 물어본 질문에 답을

모아 만든 책을 보면(지금 당장 옆에 하루키책이라곤 이거 하나뿐이라서)

"왜 일본의 소설이라 음악에 대해 코멘트 하지 않나요?" 라는 질문에

하루키는, 동시대 일본 작가의 책은 잘 안 읽게 되지만, 그 대신에 옛날 작가는 곧잘 본다.

그러면서 예를 드는 작가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나쓰메 소세키.

존경한다면 여기서 다자이 오사무의 이름도 나와줘야 하는 게 아닐까.


혹시 이 사정이나 내막을 아시는 분?

Posted by H군

밴쿠버

2007. 4. 24. 17:37

마님이 밴쿠버 공립 미술관 사진 올린 거 보고
2003년 11월 며칠간 뱅쿠버에서 지냈던 시간이 생각났다.
나이 먹고 처음 떠난 해외여행, 왠지 모를 두려움, 전혀 안 되는 영어,
한국에 있는 누군가에 대한 애틋함, 메꾸기 힘든 마냥 빈 시간들.
그때는 다음 여정지인 일본으로 어서 가고팠고, 일본 가서 더 즐겁게 지낸 거 같은데
환기되는 기억의 풍경은 밴쿠버가 더 강렬하다.
말이 전혀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느끼는 그 황량한 공기.
이제는 꽤나 그립다.

2년만 버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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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군

당신의 진짜 나이는?


"당신의 몸과 마음, 라이프 스타일로 진단한 '메디컬 에이지'를 체크"할 수 있다는 테스트.

일어 사이트인데, 간단한 질문이라 번역기로 돌려도 크게 문제는 없을 듯.

나는 33.5세-_-

역시 매일의 술과 장기간 다량의 흡연이 문제.

그래도 액면가보다는 젊게 나온 거 아닌가? 라는 말씀은 자제 해주시죠.-_-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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