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별로 구분해서 들을 줄 모르는 얕은 귀를 가진 내가,

그나마 나눠서 들어본 곡이 있다면 베토벤의 '열정'일까.

리흐테르, 박하우스, 길렐스, 켐프, 슈나벨, 굴다 이정도 들어보면서

아, 아무개의 연주는 이렇고 저렇고 할 깜냥은 전혀 없고 그냥 리흐테르가 제일 맘에 드는구나로 끝.

근데 오늘 우연히 백건우의 열정을 들었는데 순간 안구에 습기차는 감동이 밀려온다.

어차피 올 12월 백건우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회 일주일 티켓은 포기했지만,

열정 연주하는 날은 꼭 가봐야겠다.






BEETHOVEN: Piano Sonata No. 23 in F minor op. 57 "Appassionata"
KUN-WOO PAIK_
piano
Posted by H군

?

2007. 4. 19. 08:02

이번 버지니아에서 일어난 참사를 두고,

한국인인 게 부끄럽다 운운, 심지어 이제 미국 가기는 글렀네 운운하는 이들이 있더라.

미친 거 아녀?

Posted by H군
근조 포스트에 트랙백.

운동을 하고 여느 때처럼 라커스에 들러, 작정해뒀던 책을 펼쳐보고 있는데 전화가 오다.

받아보니, 런던에 가 있는 회사 대표.

급하게 검토해야 할 외서자료가 있는데 나에게 메일 보냈으니 아무개에게 포워딩해달라고.

맥주 한 병 더 마시고 투덜투덜대며 회사로.

(어차피 라커스에서 집에 가는 길에 회사를 지나가긴 하나...남들에게 내 동선은 너무 뻔하게 파악되어버렸다-_-)

메일 포워딩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맥주나 살까 봤더니,

세상에나 하이트 프라임 500ml 캔이 그 편의점에 있는 것이다!

주머니를 털어 남아 있는 하이트프라임을 사재기.

생각해보면 작년 여름에 진작 단종시킨다는 맥주였으니 유통기한이 다소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

그래서 지금 꿀꺽꿀걱.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다문다문 운동하는 이유는, 조금더 술을 잘 마시기 위한 방편인 듯.



Posted by H군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는 건 즐겁다.
원체 수다스러운 인간인지라, 특히 술자리에서 웃고 떠드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혼자서 문자텍스트를 읽는 것, 역시 즐겁다.
굳이 그걸 '대화'라고까지 표현할 나위는 없지만, 역시 혼자할 수 있는 것 중
독서만큼 즐거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처럼 말귀 못 알아들었다고 군소리 들을 일도 없고,
썰렁하다고 핀잔 먹을 일도 없으며, 술 취해 저지르는 뻘짓도 없다.
'책'과 그것을 읽는 '나'가 있고, 그 '책'은 '나'에게 온전히 전유된다.
괜한 수인사도, 호들갑스러운 맞장구도, 쌉쌀한 헛웃음도 필요없다.
그냥 내 멋대로 읽으면 그만.

그런데, 최근 어떤 소설과 관련한 독자 문의를 받으며, 멋대로 읽는다는 게
다소 아슬아슬한 데가 있다는 걸 새삼 절감.
한 번은 이 소설의 번역이 잘못된 게 아니냐며 전화가 왔다.
어째서 처음에는 '나'로 시작하더니 갑자기 '그'가 나오냐는 거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다가 계속 말을 듣다보니 이 독자는 소설이 어떻게
1인칭 시점에서 기술되다가, 3인칭 시점으로 바뀔 수 있냐는 거다.
이 소설이 '나'에 의해 기술되는 부분과, 3인칭으로 기술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진행되는데 그걸 전혀 납득을 못하는 것이다.
번역 잘못된 것이 아니니, 읽다보면 그 방식을 이해하시게 될 거라고 말씀드릴 수밖에.
또 한 번은 메일로 문의가 왔다.
읽으면서 나오는 오타를 나올 때마다 계속 보내오더니(이건 부끄럽지만 고맙기도 하다)
다소 황당한 오타 지적을 해왔다.
부인이 자기 남편에게 어떤 부탁을 하였고, 남편은 이에 충실히 따르는 대목이 나온다.
그러면서 작가는 남편을 '늙은 하인'이라고 은유하는데 이 독자는 그걸 전혀 이해 못하는 게다.
집안에 하인이 없었는데 왜 갑자기 늙은 하인이 나오냐고 지적을 한다.
이러저러해서 저자가 쓴 은유라고 답을 해도 통 납득을 못하겠다고 메일이 왔고
원서에 명백히 그렇게 나와 있다고 다시 메일을 보내자 그제서야 잠잠.

(재수없는) 이인화의 첫 소설의 제목에서 따자면,
"내가 읽은 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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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1922년 11월 11일 지구를 방문하였다가 2007년 4월 12일 외계로 돌아가다.

외계의 몸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다가 드레스덴 폭격의 참관을 목격하여

지구인에 미련을 버리다. 이후 지구의 미련함에 대해 신랄하게 기술하였다.

SF문학으로 자신의 작품이 귀속됨을 거부했던 그의 작품들은, 사후 아마 외계문학으로 재분류될 것이다.

삼가 명복을.




*그림출처 writersmugs.com



 





Posted by H군
예술이란 게 어떤 신성함을 지녔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예술을 창조한다는 행위는 순전한 노동의 범주에서 사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예술작품이 어떤 대단한 변화를 이루어낸다거나
세상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믿지 않는다.
예술이란 그저 일상을 켜켜이 채워가는 하나의 조각일 따름.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 소설이 무엇을 선전선동하기 위해 씌어졌든,
또는 그저 지적 마스터베이션으로 방출됐든,
또는 원숭이 100만 마리가 100만 년간 타자기를 두드린 것이든 간에
그것은 기껏 소설 또는 그것과 비슷한 무엇일 따름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가 존재를 하고, 그 행위가 점유한 시간이 있다.
그래서? 끝이다. 다 읽었으면 이제 선전선동을 하든, 마스터베이션을 하든,
원숭이와 함께 타자기라도 두드리든 그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그렇다, 그건 '당신'의 자유다.
나는 대체로 다음 소설을 읽을 자유를 택하고자 한다.

어제는 라커스에서 맥주를 비워가며 한 권의 소설을 읽었다. 꽤 마음에 들었다.
내 안의 어딘가와 묵직하게 반응을 하여 진동했다. 기분이 썩 좋기도 하고 썩 괴롭기도 했다.
걸어 집에 들어가며 그 진동에 대해 생각을 했다.
그리고 '소설'이란 것에 대해 생각을 했다.
집앞에 도달하여 깨달았다. 열쇠를 회사에 두고 왔음을.
집앞까지 왔다가 열쇠를 찾으러 회사로 돌아가게 되는 것에 비견하여
예술, 소설이 그보다 대단한 무엇이라고는 역시 생각하지 않는다고 결론 짓고
씩씩거리며 집문을 열었다.


Posted by H군

딴청

2007. 4. 7. 11:30

출근을 하고, 배달된 신문을 정리하고 냉수 한 컵과 커피 한 잔을 자리에 올려놓은 다음

컴퓨터를 세팅한다.

MSN, 구글토크, 네이트온, 세 가지 메신저에 로그인하고, 한글과 아웃룩을 열고 나서

웹마(정배형이 소개해준 익스플로어 대신 쓰는 웹브라우저. 써보면 굉장히 편리하다)를 연다.

기본적으로 열어두는 페이지들, 우선 알라딘과 아마존재팬, 식구넷, 내 블로그, 구글, 네이버.

그러고는 즐겨찾기에 넣어둔 다른 사람 블로그를 하나씩 살펴본다.

업데이트된 글과 리플까지 쭉 보고 나서, 이제 뉴스를 쑥 흝어보고 난 뒤에야

아웃룩에 있는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할 거 있으면, 그냥 그 메일 열어두고 오늘 중으로 보내야지 하고 둔다.

.
.
.

부탁받은 원서 검토 때문에 토요일에 회사 나왔는데 여전히 한 페이지도 안 들여다보고

평소처럼 똑같이 딴짓하고 있다.-_-

벌써, 12시가 다 되가네.


Posted by H군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나오는 격주간지, <기획회의> 196호 특집이 '일본출판계 철저 연구'다.

일본의 미디어전문지 <쓰쿠루(創 )>의 기사를 번역전재한 것.

한해 일본의 출판동향과 메이저출판사들의 현황이 담겨 있어, 꽤 재밌다.

개중 몇 개 눈에 띄는 흥미로운 대목.

* 편의점 세븐일레븐에서만 판매되는 책 매출이 1800억~1900억 엔.
로손과 패밀리마트를 합치면 역시 그정도라고.
(한국의 편의점 책 판매는, 실질적인 판매 효과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편의점에 배치되는 광고 효과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듯)

*아마존재팬 매출이 기노쿠니야(일본 최대의 서점, 한국에서 교보의 위상을 생각하면 될 듯) 매출을 넘겼다고 추정.
미국 아마존의 경우 책과 DVD 판매로는 수익을 못 맞추지만, 일본의 아마존은 책과 DVD로만 이미 흑자라고.
(국내 출판사들의 대부분은 온라인 서점 판매 비율이 50% 이상일게다. 온라인 대 오프라인 매출 비율이 크게는 7:3에서 8:2까지 가는 출판사도 있다.)

*일본도 전체적인 출판시장의 규모는 계속 마이너스지만 독서인구는 더 늘었다고 추정.
최근 5년간 일본인 도서관 연간 대출권수 6억권, 일인당 일년에 5, 6권은 빌린다는 이야기.

*<노다메 칸다빌레>(고단샤)가 드라마화로 한층 탄력을 받아 곧 누계 2000만 부 돌파 예정이라고.
얼마전 완간된 <데스노트>(슈에이샤)는 누계 2500만 부, 해설본(왜 안 필요하겠어!)도 7, 80만부 판매.
(참고로 1억부 넘게 팔린 만화책으로 드래곤볼, 슬램덩크, 여기는 잘나가는 파출소,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이 있다. 최다 판매는 아마도 드래곤 볼일 듯. 1억9천만 부라는 얘기가 있다)

*고단샤 연간 만화 단행본 발행 권수가 1억 권, 작년 고단샤 전체 매출은 1500억 엔.
(한국 메이저 출판사의 매출액은 삼, 사백억 사이. W출판사라면 몇 년 안에 1000억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년이 만화잡지 <주간 소년 매거진>(고단샤)과 <주간 소년 선데이>(쇼가쿠칸)이 함께 창간 50주년을 맞는다고. 그래서 두 잡지가 함께 특별한 기획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그 구상이 꽤나 흥미롭다. 예컨대 <거인의 별>, <맹세의 마구>, <터치>에 나오는 팀들이 겨루는 게임이라든가 김전일과 코난이 협력해서 사건을 수사하는 게임 등이 구상되고 있는 모양.




Posted by H군

점심 전

2007. 4. 5. 11:28
4월 말에 전주 영화제를 빙자해서 전주 맛집술집 가자는 얘기를 하면서

전주 맛집들에 수다를 떨다보니 배고파졌다.

그래서 점심 전에 혹 이 블로그에 들어올 분들의 배고픔을 더 자극하기 위해

작년 전주 오원집에서 먹었던 연탄불 고추장 제육볶음과 김밥, 족발, 그리고 가맥의 북어 사진을 올린다.

즐 점심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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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군

가면

2007. 4. 3. 20:30

다문다문 전에 일하던 회사에 가게 된다. 드러내놓고 자회사라고 선전하지는 않지만

(말하자면 관계없는 회사로 생각해주길 바라고 있다) 본사에서 관리부터 디자인, 마케팅을 다 해주는 관계다보니,

아니 갈래야 아니 갈 수가 없다. 사실 가서 사장과 마주칠 일만 없으면 가는 게 그리 싫지는 않다.

십 분 남짓이면 갈 수 있고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랑 담배 피고 농담 따먹으며 노니까.

그런데 본사(라고 하자)에 들어서서 사람들과 인사하곤

("왜 이렇게 자주 와!" "일 없나보지, 맨날 오네" 등을 인사라 부를 수 있다면)

볼 일 챙기며 여기저기 드나들면서 '참, 내가 여기서 잘도 생활했네'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서너 명이 있는 공간에 적응해서인지, 그래봐야 기껏 삼십여 명이 있는 곳인데도

사람에 부대낀다는 느낌이 확 밀려온다.

원체 잡스러운 인간이고, 주둥아리 가볍게 조잘조잘 수다 떨고 농담 따먹으며 시간을 쪼개왔지만,

또 본사 와서 맨날 그러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은 뭔지 모를 불편함이랄까, 어색함.

맞지 않는 가면(대가리가 하 크다보니 보통 가면 가지고는 택도 없다)을 쓰고 있는, 그런, 기분, 알까?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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