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M형과 1시까지 달리고, 택시를 기다리다가 아무래도 잡을 성 싶지 않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며 졸았는데, 눈을 떠보니, 구파발.

깜짝 놀라 후다닥 뛰어내려 횡단보도를 건너고 주머니에 슬쩍 손을 집어넣고 보니 지갑이 없다-_-

버스는 저 멀리 떠났고,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어봐도 받질 않는다(담날 아침에 걸어보니 지갑 분실물 없단다).

바지 주머니를 뒤져보니 잔돈으로 2,200원이 나와 딱 그 돈 만큼 택시를 탄 뒤 걸어서  귀가.

카드 분실 신고는 해놓고 내일 분당의 점심 약속은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다가,

결국 돼지 저금통을 깨다. 새벽 3시에 방바닥에 앉아 500원, 100원 짜리 동전을 나눠 쌓아가는

내 꼬라지에 괜히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여튼, 세어보니 십여만 원이 나와 주말 내내 500원 짜리 동전 한 웅큼 주머니에 채워놓고

분당도 다녀오고, 만화방도 가고, 종로에서 술도 마시고, 목욕탕에, 시장까지 보다.

카드가 없으니 절로 교통요금을 알게 됐는데, 현금 승차시 시내 버스는 900원, 분당행 좌석버스는 1500원,

지하철 1구간 900원(곧 오른다고 하지만).

나란 인간의 문제는, 이렇게 지갑 잃어버린 경험에 좀 쓰려하면서 고민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하는데

잠깐 투덜거리다가 그냥 실실 웃으며 예전과 별 차이 없이 심심하게 넘어가고야 만다는 것.






Posted by H군

SATIE: Gymnopédies
Francis Poulenc_piano



비가 오는 봄날, 어울리는 곡이라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건잰로지즈가 March Rain을 발표 안해준 덕에

다행히 3월에는 11월 비 오는 날과 같은 괴로움은 피해갈 수 있다.)

흔하게 떠오르는 음악으로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이나, 쇼팽의 전주곡 15번.

(아, 진짜 진부하기 이를데 없다. '봄'과 '빗방울'이라는 부제가 붙은 곡이 떠오르니.

좀만 있음 비발디의 사계 중 봄까지 나올라.)

사티의 짐노페디도 그럭저럭 어울리지 않을까.

이 나른한 서정감.

겨울의 우울이 살짝 묻어 있으면서도, 마냥 차갑지만은 않은 봄비의 온기가 피부를 자극하여

막 겨울잠에서 깨나 하품하는 푸우...라고 하면 역시 말장난이네.


Posted by H군

MASSENET: Meditation - from Thais
Josef Hassid_violin
Gerald Moore_piano


라디오에서 이 음악이 나오니(라디오에서는 안네 조비 무터의 바이올린에, 레바인이 지휘하는 빈필의 협연)

이 익숙한 멜로디에 은근히 나른해진다.

알고 보면 '타이스'라는 오페라는 수도사가 타이스라는 무희를 개종시키려다가

타이스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겪는 고뇌와 타락을 그린 내용.

그러니 나른함과는 그닥 관계가 있을 성 싶지 않지만

귀에 익숙하다는 이유로 본디 텍스트와 의도치않게 소비된다.

그러고 보면 익숙함이란, 굳이 가치판단을 배제하면, 꽤나 유용하다.

그러니 해묵은 기억이나 상처따위들도 익숙해지면,

본래의 정황은 지워지고 변형되어, 멋대로 현재에 유용하게 기능하는 게 아닐까.

밀어내기 하려다 말이 길어졌다.

그나저나 날 디게 좋네.










Posted by H군
월요일 주간 회의를 하며 무심코 달력을 쳐다보니 엇, 어느새 이월이 사흘밖에 안 남았구나,

정신없이 일하며 이월을 지내고 보니 이렇게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구나, 라고 말하면 거짓말.

지난주 월요일 쉬면서 일주일이 빨리 지나가기에, 다음주는 삼일절이 있어 또 일주일 설렁 지나가겠구나,

라고 술 먹으며 시시덕댔었으니.

그래도 어느 틈엔가 총총총 날렵한 발걸음으로 스르륵 이월이 지나간 느낌.

봄이 오니 실없이 싱숭생숭거리기엔 너무 구질해졌지만, 그래도 괜히 몸을 채쳐 기지개라도 켜고 싶어진다.

그러다 심장의 낡은 혈관이 간만에 펌푸질 할지도.



Posted by H군

"사내와 계집은 말이야, 붙어 있다 보면 품성까지 닮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사귀는 상대를 잘 골라야 해."

"인간이란 누구나 상대가 제일 듣고 싶지 않은 소리를 하는 주둥이를 갖고 있지.
아무리 바보라도 듣기 싫은 소리는 아주 정확하게 한다니까."

-미야베 미유키, <누군가>(북스피어, 2007) 389쪽







"난 내가 결함투성이 인간이라는 걸알아.
게다가 그걸 고칠 생각도 없는 이기적인 녀석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애정 비슷한 걸 상대방한테 갖고 있다면,
무의식중에 멀어지려고 할지도 몰라."

-온다 리쿠, <흑과 다의 환상 하>(북폴리오, 2006), 207쪽

Posted by H군

触れるな

2007. 2. 20. 21:59
내 낯짝을 본 이라면 코웃음 칠지도 모르겠지만, 나라는 인간은 화내는 데 그리 능숙하지 못하다.

아니, 거의 젬병이다. 화를 내는 것이 적절하고 심지어 바른 순간에도 헤~하고 바보같이 웃음 짓거나

그냥 고개 숙이고 말문을 닫아버리는 인간이, 나다.

그런 면이 때로는 외모에 상대하여, 실제보다 훨씬 더 '사람 좋은 인간'으로 인상 짓게 기능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역시 '기능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페르소나가 그리 힘들지 않다.

그런데, 가끔은 그 '사람 좋은 인간' 노릇하기가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예컨대 오늘 같은 날.

그러나 역시 소심한 A형, 처녀자리 인간인 나는 전혀 화를 내지 못한 채, 심지어 사과까지 하고 말았다.

그러고는 메신저 메모에 기껏 이렇게 써놓는다.

그러니 제발.









Posted by H군

흉통

2007. 2. 20. 11:59

가슴이 아프다.

대체 무슨 마음의 상처가 도져 내 가슴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 걸까... 하고 생각해봤더니

설날 저녁 사촌동생, 조카들과 술을 마시는데 군에서 휴가 나온 애와 이제 곧 장교로 입대할 애들이

힘자랑을 하며 근육이 어떻고 주먹은 어떻고 하는 시덥잖은 소리를 하길래

그럼 삼십대인 나와 팔씨름을 해서 이기면 인정해주마며 취기에 헛소리를 내뱉았다고

걔네들과 팔씨름  하느라 용을 썼더니 이렇게 가슴이 아픈 게다. 흑.

그래도 이십대 초반의 사촌동생들은 가뿐하게 진압을 해주어 의기양양...하다가

이제 갓 고등학교 졸업하는 조카에게 단방에 넘어가버렸다. 흑.



*올 설의 목표였던 세뱃돈 받아내기는 우연한 기회로 성공하여 2만원을 받다.

그러나 사촌동생들에게 술 사준다고 호기 부렸다가 10만원 제출. 흑.








Posted by H군

구정

2007. 2. 16. 11:16
연휴로서의 가치도 대폭 차감된, 토일이 겹친 구정 연휴.

그러나 추석, 구정 때는 제주도에 내려가야 하고, 어차피 지내는 거면 짧은 게 낫다.

그래서 이제 곧 공항으로.

이번 설의 목표는 애들이 세뱃돈 받는 틈에 슬쩍 세뱃돈 한번 받는 것과 꿋꿋하게 세뱃돈 안 주고 버티기.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Posted by H군

밤과 꿈

2007. 2. 13. 07:37

예전에 네이버인지 이글루스인지 여튼 어느 블로그에도 올린 적 있는

슈베르트의 밤과 꿈.

노래하는 이 역시, 지난번에 올렸던 디트리히 피셔, 그리고 피아노는 제랄드 무어.

그림은 클림트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슈베르트>.

결론은 밀어내기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SCHUBERT: Nacht und Träume D. 827
Dietrich Fischer-Dieskau_baritone
Gerald Moore_piano



Posted by H군

mogiiii said의 삼성제품 사지 말자 포스트에 트랙백.

시사모 홈페이지가 어제부터 북적인다.

자유게시판에 글이 수없이 올라오고, 응원의 메시지로 넘쳐난다.

이유인즉, 어제 PD수첩에서 방영한 <삼성공화국, 언론은 침묵하라>라는 방송 때문에.

이 들끓는 에너지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다행하다.

그간 설핏 들었던 당신이라면 이 방송을 보는 것이 나쁘지 않겠다.










방송을 다 봤으면 이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한 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내 생각은 이렇다.

우선 시사모 홈페이지에 가서 적당히 골라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 안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사소한 몇 가지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리고, 그렇다면?

하나의 제스츄어든, 보여주기 위한 액션이든, 오래 지속해갈 신조이든 간에

개인이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삼성제품을 사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려운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정도의 행동 없이 끝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금창태가 개새끼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곳이 삼성공화국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H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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