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모

2007. 1. 18. 17:29
지난번에도 한 번 올린 적이 있고, 다들 별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올려본다.
혹시나 자세한 정황은 알고 싶으시면 시사모(
http://www.sisalove.com/)에 들어가서 읽어보시길.


[고종석 칼럼] '시사저널'사태가 무서운 까닭


지난해 6월 한 재벌회사 관련 기사가 발행인의 지시로 인쇄 직전에 삭제된 데서 비롯된 시사주간지 '시사저널' 사태가 황당한 지경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기사가 빠진 데 항의해 편집국장이 낸 사표는 즉시 수리됐고, 기사 삭제와 편집국장 사표 수리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이 직무정지나 대기발령 같은 중징계를 줄줄이 받은 데 이어, 경영진은 노동쟁의의 와중에 대체 인력을 투입해 기자들의 손을 전혀 거치지 않은 잡지를 지난주에 이어 두 호째 내 놓았다.
 

▲ 1월18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고종석 칼럼

노동쟁의 와중에 대체인력 투입 제작

반년 이상을 끌어오다 한국 언론사상 초유의 '완전한 대체인력에 의한 제작'이라는 살풍경을(차라리 '진풍경'을) 빚은 시사저널 사태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에 대한 자본의 우위가 더할 나위 없이 확고해졌음을 새삼 확인시켰다. 그러나 자본의 욱일승천 자체가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판단을 이 자리에서 내리고 싶진 않다.

한 사회의 모든 가치와 동력이 자본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은 특정한 개개인의 욕망이나 윤리를 떠나서 한국사의(어쩌면 세계사의) 현단계가 짜낸 구조나 '대세'의 문제일 테다. 또 이 사태의 핵심이라 할 편집권의 귀속 문제나 대체인력 투입의 위법성(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43조는 쟁의행위 기간 중 그 쟁위행위로 중단된 업무의 수행과 관련해 채용, 대체, 도급, 하도급을 금지하고 있다)에 대해서도 시비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 언론의 편집권은, 시사저널 경영진이 주장하듯, 최종적으로 발행인에게 속할지도 모른다. 또 지금 시사저널 제작에 투입된 외부인력을 이 회사의 '비정규직 노동자'라 우겨 말한다면, 이 잡지사 경영진은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사저널 경영진의 입장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이해해준다 할지라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그들은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난 반년 이상 경영진이 보여준 행태가, 위법 여부를 떠나, 몰상식해서다.

편집국장 몰래 인쇄소에서 기사를 들어냈다는 사실 자체가 몰상식했고, 이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자들을 줄줄이 중징계 처분한 것이 몰상식했고, 급기야 노조가 파업을 하자 다른 언론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돼 있는 필자들을 동원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잡지를 내놓은 것이 몰상식했다. 말하자면, 이 사태 내내 시사저널 경영진이 기자들과 맞선 방식에는 기품이 없었다.

지난주와 이번 주 시사저널은 그간 정파적 치우침 없이 시시비비에 공정했던 이 잡지에 강한 정파성의 너울을 씌웠다. 그러나 시사저널 기자들이 '짝퉁'이라고 부르는 이 두 호 기사들의 본질적 문제는 그 논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품 없음'에 있다.

기실 한국의 소위 주류 저널리즘이 민주화 이후 드러내고 있는 구접스러움도 그 논조에 앞서서 그 언어의 기품 없음에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게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정권 홍보담당자들의 기품 없는 언어는 주류 저널리즘의 기품 없는 언어가 거울 저편에 만들어놓은 짝패인지도 모른다.

지난주와 이번 주의 시사저널은 그간 논조의 공정함에 더해 언어의 기품까지 보여주었던 이 잡지의 역사에서 큰 흉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기사들의 기품 없음은 경영진이 이번 사태에 대처해온 방식의 기품 없음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기품 없는 저널리즘 언어가 더 섬뜩

시사저널 기자들이 지난주와 이번 주 잡지를 '짝퉁 시사저널'이라 부를 때, 거기선 얼마간의 경멸감이 묻어난다. 그러나 나는 이 '대체 시사저널'이 경멸스럽다기보다 무섭다.

이 두 호는 미국 작가 잭 피니의 SF스릴러 소설 <바디 스내처>(1955)에 나오는, 인류의 신체를 취해 지구에 번식하는 외계생물을 섬뜩하게 연상시킨다. 껍데기는 영락없는 시사저널이지만 속은 '스내처(강탈자)'의 것인 이 '가짜 시사저널'이 힘겹게 저널리즘의 기품을 견지하고 있는 몇몇 매체들마저 감염시키지 않을까 두렵다.







 서명숙이 만난 김훈 ,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오늘, 김훈 선배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어젯밤 김훈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칼의 노래> 작가로 더 알려져 있지만 시사저널 후배들에게는 그저 편집국장을 지낸 선배이지요). “<짝퉁 시사저널>이 나왔다는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묻더군요. 컴퓨터를 배격하는 아날로그적인 양반이라서 <오마이뉴스>에 실린 제 글을 보지는 않았는데 어떤 매체의 기자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구요. 오피스텔에 칩거해 글만 쓰느라고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면서, 왜 미리 얘기해 주지 않았냐고 서운해 하시더군요.

오늘 일산 김선배 집 앞 커피숍에서 <시사저널>에서 한철을 보냈던 세 사람이 만났습니다. 낮 12시에 만나서 오후5시30분이 되어서야 헤어졌습니다. 긴긴 시간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요. 아, 저는 물론 술은 아니 마셨습니다. 1월1일에 술을 끊기로 결심했으니까요(타이밍 한번 정말 잘못 잡았습니다).

김선배는 아직 <시사저널>899호는 받아보지 못했더군요. 오늘 집에 가면 와 있을 거라구요. 그러나 주변의 전언으로 대강의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퇴기(퇴직한 기자의 줄임말)’는 여기 일일이 옮겨적을 수 없을 만큼 긴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옛날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새벽까지 마감하고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해장하고 아침해를 보면서 퇴근했던 일, ‘청와대 밀가루 북송사건’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고소를 당해 검찰 포토라인에 섰던 일, 한 주 걸러 한번씩 고소장을 받아들던 일, 그보다 더 자주 언론중재위에 불려갔던 일, 걸핏 하면 사표 쓰고 칩거한 김선배의 뒷감당을  하느라 후배들이 애먹었던 일.

그러다가 김선배의 눈에 물기가 비치더군요. “내 청춘을 바친 잡지인데, 후배들이 그 어려운 시기도 넘기면서 지켜온 제호인데‘’‘” 말을 채 잇지 못하더군요.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면서 너무 울어서 더는 울고 싶지 않았던지라 퉁명스레 맞받아쳤지요. “청춘은 무슨 청춘, 선배는 이미 한물 간 나이였어요. 30대인 우리가 청춘의 절정이었죠.”

김선배는 계속 우기더군요. 자기도 청춘이었다구요. 나이는 몰라도 정신적으로 청년이었던 것만큼은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김선배는 말하더군요. 편집국장하면서 굉장히 편했다구요. 실무는 몽땅 후배들에게 맡기고 자기는 편집국을 공격하는 외적만 방어했노라고.

‘외적만’이라고 김선배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사실 외적의 출몰이 좀 잦았던가요. 그때만 해도 우리 사회에 권위주의적인 잔재가 남아 있던지라 청와대, 국정원(당시는 안기부), 검찰 에서부터 종교집단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문제를 까발린 기사에 대해 가만놔두지 않겠다고 으름장 놓는 곳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신문 방송이라는 거대한 보호막도 없는 자그마한 독립매체가 어지간히도 까불었던 셈입니다.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

술기운 탓인지 김선배는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나도 시사저널에 정신적인 지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청춘을 바치고 뼈를 갈았는데....당신들도 다 마찬가지고.” 심각해지기 싫어서 ‘뼈는 몰라도 연필이랑 지우개는 많이 갈아바쳤죠’라고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원고지에 연필로 데스크 컬럼을 써내려갔던 김훈 선배는 책상 주변에 지우개똥을 어지간히도 흘려놓곤 했었으니까요).

‘짝퉁 시사저널’로 화제가 옮겨가자 김선배는 비통해했습니다. 수많은 정기구독자를 생각하면 결호를 내서도 안되지만, ‘짝퉁’도 말이 안되는 일이라구요. 생각만 해도 바늘로 콕콕 쑤시는 것처럼 아프다구요. 시사저널은 단순한 사적 소유물이 아니라 사회적 재산인데, 그런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푸르른 청춘과 뼈를 갈아바쳤는데, 그런 매체가 한번 세상에 나와 착근하려면 십년 이십년도 더 걸릴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 것인가, 라구요. 이건 그곳에 몸담았던 사람들에 대한 능욕이라구요.

옆에 있던 또다른 퇴기가 말했지요. 우리가 이럴진대 거기 몸담은 후배들은 짝퉁 시사저널을 보면서 얼마나 괴롭고 모멸스러웠겠냐구요. 젊은 후배들 중에는 잡지 만드는 게 너무 신나고 좋아서 아예 집에도 안 들어가는 놈들도 있다구요. 김선배가 되묻더군요. "야, 정말 그러냐. 고놈들, 정말 이쁘다. 언제 술이나 사줘야겠다."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더니 급기야 김선배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카페에 들어설 때 “소설가 김훈 선생님 아니냐?”고 반색하며 맞았던 여주인은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구요(다 늙은, 또 늙어가는 남자 둘과 여자 하나가 울다 웃다 하는 희한한 풍경을 어찌 받아들일지 참 난감했습니다).

그러나 김선배는 시사저널의 오늘을 있게 만든 건 소유주도, 전현직 기자도 아닌 독자들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독자들에게 지금의 사태는 너무도 면목없고 미안한 일이고(잘잘못이 어디에 있던 간에), 하루 빨리 진품 시사저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게 오늘 술자리의 결론이었지요.

그러니 사태 해결을 위해 선배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뭐든 해보자고요.

오늘날 시사저널 사태가 파행으로 치달은 원인이 편집권은 사주나 발행인 개인의 것이 아닌 편집국 구성원의 이성의 산물이라고 믿으면서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지켜온 <시사저널>의 오랜 전통을 지켜나가려는 후배들과 새로운 발행인과의 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그런 전통을 만들어낸 선배들 역시 원인 제공자 중 하나이니까요.

마음만큼이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 허허벌판 일산에서 ‘퇴기’ 출신 원고 노동자-한명은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나머지 둘은 별볼일없는 프리랜서였지만요-셋은 ‘주민등록주소지’인 각자의 집으로 총총히 돌아왔습니다.

 

들어서자마자 친정어머니가 말하시더군요. “야, 군대서 옷 왔다.” “어머, 그래요?” “근데, 뭐 학사경고장인가 하는 것도 왔더라.”

‘군대에 온 옷’은 1월2일 논산훈련소에 훈련병으로 입소한 큰애가 집으로 부쳐온 사제 옷이고, ‘학사경고장’은 큰애가 다니는 대학에서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아, 큰애가 한창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던 시기에 김선배가 얘기했듯이 ‘뼈를 갈아’ 잡지를 만드느라 아이를 방치했고, 심지어는 ‘악마의 빚독촉 같은 마감’에 시달리면서 다른 매체보다 더 좋은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 때문에 주중에는 시댁에 맡기고 주말에만 데리고 왔었지요.

안팎으로 우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이 핑계 저 핑계로 술을 마셨겠지요. 시사저널 사태 때문에 한 잔, 아들 때문에 한 잔!

그러나 금연하면서 깨달은 진실은 담배가 풀리지 않는 원고를 대신 써주지는 않는다는 것. 지금 눈앞에 놓인 문제들 역시 한잔 술이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요.

또렷하고 맑은 정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지켜볼 작정입니다. 내 청춘을 실어보낸 <시사저널>이 지금의 위기를 멋지게 극복하고, 내 마음의 빚인 큰아이가 제 갈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금창태 "'짝퉁' 시사저널 보도에 명예훼손 소송"
"왜곡 주장 때문에 이념적 세력의 공격목표 돼"
등록일자 : 2007년 01 월 17 일 (수) 11 : 17  
 

  지난 5일부터 기자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시사저널>금창태 사장이 16일 "<오마이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왜곡된 글을 올린 서명숙 씨 등 네티즌들에 대해 명예훼손과 민사배상 청구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기자협회보>가 지난 9일 발간된 899호 시사저널을 '짝퉁 <시사저널>'로 표현한 데 대해서도 추가 고소를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편집국장의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삼성 관련 기사를 삭제했던 금 사장은 그 후 노동조합의 '편집권 독립 보장' 요구를 거절하며 단체협상을 결렬시켰다. 또 12월에는 현직 기자수와 맞먹는 취재, 사진, 미술분야의 편집위원 16명을 대거 위촉해 파업에 대비한 준비를 했다는 비난을 들었다.
 
  금 사장은 지난 899호부터 편집위원 및 외부 인사들의 글로 채워진 <시사저널>을 발행 중이다.
 
  "이 기사 빠지더라도 이해해달라 얘기했는데…"
 
  금 사장은 이날 <시사저널> 기자들의 주장에 동의하는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www.sisalove.com)의 홈페이지에 '시사저널 사태의 진실을 밝힙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소송 절차와 경위를 밝혔다.
 
  그는 "이번 사태를 <시사저널> 내부에서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보려했다"며 "다만 이미 다 알다시피 노동단체기관지 및 일부 경향성을 가진 시민단체 기관지들, 인터넷을 비롯한 군소 유사 언론매체들이 일방적이고 왜곡된 주장을 검증 없이 다룸으로써 저 자신이 일부 이념적 세력의 공격 목표가 되었기 때문에 이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앞으로 회사 차원에서 적극 대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금 사장은 같은 글에서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삼성 기사 삭제 사건'에 대한 나름의 경위를 밝혔다.
 
  그는 "(당시) 편집국장에게 기사를 빼고 더 검증해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그때 가서 결정하자고 했고 취재기자를 불러서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인간적으로 부탁도 했다"며 "내가 S그룹에 오래 있었던 사람이고 000 부회장에게 업무상 신세를 많이 졌고 후배다. 그러니 이 기사가 빠지더라고 이해해달라고 인간적으로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그는 "기사를 빼고 나서 다음날 토요일 아침에 기협회장에게 알리고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기협 대표들과 만나 경위 설명을 했고 간부들에게 이 사태를 설명하겠으니 내 방으로 오라고 했으나 안 왔다"며 "그런데 그 다음날 아침에 이윤삼 편집국장은 편집국에 작별인사를 한 뒤 제 방에 와서 사표를 내고 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그 후 기자협회에서는 사장 퇴진 운동을 벌이는 것은 물론 대자보를 붙이고 아침마다 제 방에 와서 데모를 하고 일부 매체에서는 저를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질서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다음에 시사저널과 저에 대한 인신공격, 명예훼손을 시킨 언론매체와 외부세력에 대해 저의 모든 명예를 걸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며 "사원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사장으로서 이런 사태를 빚게 된 데 대해 진심으로 유감을 표한다. 시사저널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외부세력의 불순한 의도를 우리는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짝퉁' 시사저널에 대한 릴레이 선언 이어질 것"
 
  금 사장은 이미 지난해 6월 <시사저널> 사태와 관련된 편집장 칼럼을 쓴 <한겨레21>에 대해 민·형사 고소를 제기했으며, 관련 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한 한국기자협회,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에 대해서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이다.
 
  또 지난 9일 <시사저널>의 고재열 기자가 기자들의 불참 속에 발행된 899호에 대한 품평기를 <오마이뉴스>에 기고하자 '해사 행위'를 했다며 지난 16일 인사위원회를 열어 징계 여부를 심의했다.
 
  <시사저널>의 한 기자는 "금 사장이 계속 법적대응에 들어가면 시사모 회원들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라며 "899호부터 시사저널은 '짝퉁'이라는 릴레이 선언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시사모'는 오는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독자들과 함께하는 시사저널 살리기 문화 콘서트'를 열 예정이다. 이날 공연에는 가수
손병휘, 전인권, 인디밴드 허클베리 핀 등이 출연할 예정이다.

강이현/기자





나도 부기해놓는다.

시사저널 899호, 900라고 감히 명명된 잡지는 '짝퉁 시사저널'이다 라고 저도 정확히 발언합니다.
저도 고소하시지요

Posted by H군
코캐인에서 술을 마시면서 예전부터 일 돕는 분 보면서 왠지 낯이 익다고 느꼈었다.

그러다 그 분이 인도 다녀왔었다는 얘기가 생각나 시기와 지역을 맞춰보니

그 분도 2005년에 8개월간 인도에 있었고, 특히 다람살라의 한국카페 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고.

그러니까 내가 다람살라에서 리 카페 드나들 때 계셨던 것.

말하다보니 인도에서 봤던 몇 안 되는 한국사람들 중에도 겹쳐 아는 이도 나온다.

한국은 이렇게도 좁구나, 라고 붐붐에게 얘기했더니

붐붐 왈, "그게 아니고 니가 아는 여자가 많은 거여" 란다.

이하 붐붐과 H군의 대화.



H군 님의 말 :
'아는 여자'라는 범주가 스쳐지나가며 얼굴 본 여자까지 포함한다면...ㅎ
H군 님의 말 :
글고 혹 아는 여자 많다한들 인생에 별 영양가는 업구나ㅎ
BoomBoom 님의 말 :
그거야 네놈이 작업을 안하는 탓이지
H군 님의 말 :
작업도 대상에 대한 욕구가 생겨야 하지
BoomBoom 님의 말 :
넌 안생기는 게 문제야
H군 님의 말 :
아니 불특정으로는 많이 생겨ㅎ
H군 님의 말 :
근데 그 사람들은 '모르는 여자'라서 문제지
BoomBoom 님의 말 :
ㅎㅎ







결론은, 모르는 여자를 아는 여자로 만들자인가. 이런 제길슨.




Posted by H군
주말 구례에 다녀오다.

이른바 김연식이라 불리는 성은 형, 연주 누나 부처에 은식 형과 함께 토요일 구례로 출발.

성은 형의 차를 타고 7시가 좀 지나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점심 무렵 구례 도착.

사성암 올라가기 전 4dr선배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한담.

("점심 안 먹어도 되나?"
"김밥이나 사들고 올라가죠."
"구례 와서 김밥을 먹겠다고? 그럼 저녁에 삼겹살 구워먹으면 되겠네."
"음. 노래방도 가야할까요. 야식으로 치킨 시켜먹어도 될 듯합니다.")

사성암은 지난여름, 우로형이 암자 바로 밑까지 차 타고 올라가 20여 분을 사투 끝에

무산소 등정에서 성공했던 해발 531m 오산에 있는 암자.

이번에는 아래에서부터 등산로를 타고 김연식과 언화 누나와 함께 등산.

정상까지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데 등산로가 가팔라서 마냥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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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을 마치고 평화식당에서 육회 비빔밥으로 곡기를 채우다.

이곳 육회에 대한 글과 사진은 구례 1 포스트 참조.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애매하여 4dr 선배의 인도 하에 하동까지 드라이브.

포장마차 재첩국수 집에서 따뜻한 머위 차를 마시며 한담.

("오늘 저녁에 진짜 삼겹살 먹나?"
"예전에 우리 여관에서 치킨 시켜먹었던 곳이 구례 아니었나?"
"맞다. 진짜 구례에서 치킨 시켜먹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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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로 돌아와 여관에 짐을 풀고 월성정육점에서 육회를 2만 4천 원어치 끊어

4dr 선배에게 기름장을 얻고(거기에 갓김치까지 주시다) 여관에서 진탕 술을 마시다.

지난 번 잠수함 님과 왔을 때 서강정육점에서 끊어 먹었던 육회와 비교하자면

월성의 것이 조금 더 신선하다. 그리고 서강보다 얇게 썰어 술 안주로 먹기에 더 편하다.

육회와 마른 문어를 안주 삼아 소주 8병, 맥주 피처 3병을 비우다.

5시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12시쯤 먼저 뻗고 기억이 없다. 증언에 따르자면 이후 30분 내로 모두 쓰러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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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목화식당에서 해장. 뜨거운 선지를 넘기다가 목을 데다. 증세는 인후염과 거의 별반 없다.

돌아가는 길, 성은 형 내내 육회를 추억하다.
Posted by H군

어제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었던 안향연(또는 안향련, 안향년) 명인의 심청가 중 만좌맹인.

순간 이렇게 귀를 낚아채며 나를 넋놓게 했던 음악이 얼마나 있었던가.







안향연 명인의 음원이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주세요.





Posted by H군

붐붐의 구린 명곡 Top 10 포스트에 트랙백.

세상에 구린 노래가 한두 개인가. 세상이 후져지고 있듯이 음악도 후져지고 있고,

인간도 후져지고 있다(예, 명실상부한 예가 저겠죠).

굳이 꼭 나에게 후진 노래는 이거요, 라고 말할 절실한 이유도 없고

이 후진 세상에 역시 후진 취향의 리스트 하나 추가할 따름이겠지만

이 후진 세상에 기껏 이런 재미라도 없다면 너무 후져서 살겠나.

예, 라커스형 그간의 린처놀이는 이런 맥락이었어요. 죄송해요ㅎ


Long Goodbye - Camel
<노르웨이 숲>에서 나가사와는 와타나베에게 이야기했다.
"그레이트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자라면 친구가 될 수 있지."
나는 이야기하고 싶다.
"롱 굿바이를 세 번 연속 트는 자라면 원수가 될 수 있지."

Old & Wise - Alan Parson's Project
고등학교 때 굉장히 좋아했었다.
헤르만 헤세 같은 곡이다. 그때나 좋아할 곡.

Try me - UFO
마이클 쉥커는 스콜피온즈에서 나왔다는 것으로 괜히 평가 받는 기티리스트가 아닐까.
스콜피온즈나 UFO나.

Endless rain - X-japan
rain이 들어가고 제대로 된 곡이 뭐가 있을까. 난감하다.
대체 이런 노래를 표절하는 가수나, 그게 또 히트하는 여기나.

Midnight Blue - E.L.O
라이트 오케스트라란 결국 카바레 사운드가 아닐려나.

Stand by me - Oasis
오아시스를 대놓고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안 친해진다.
아니 안 친해지고 싶은 걸지도. 그 중에서도 이 노래는 이지메하고 싶어진다.  
(열군 미안ㅎ)

Summertime - Janis joplin
재니스 조플린의 목소리를 원래 안 좋아하지만,
90년대 초중반 서머타임 신청하고 괜히 폼잡던 언니오빠들이 그리 얄미웠다.
지금도 계신가요?

Somewhere over the Rainbow - Impellitteri
영화 스코어를 기타로 장난치는 짓거리의 효시가 임펠리테리의 이 곡이 아닐까.
그 죄로 무지개 너머 그곳에 100년간 이 곡을 감금!

Parisienne Walkways - Gary Moore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Roy buchanan

영동 부루스, 무정 부루스, 대전 부루스 등등의 이른바 '부루스' 곡이나 이 곡이나
그 안의 정서는 별차이 없지 않을까.



근데 사실 이런 노래들 어쩌다 한 번쯤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 안의 숨은 매저 성향일까.





11시 51분
이 회사 들어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KBS 1FM을 종일 틀어놓고 있다는 것.
지금 기가 막힌 판소리가 나와 KBS 1FM에 들어가 뭔지 확인해봤더니
안향연이 부른 판소리 <흥보가 중 놀부심술대목부터 흥보 쫓겨나는데까지>란다.
안향연이라고 검색해보면 '요절한 천재 명창'이라고는 하는데 별다른 자료가 없다
(다행히 흥보가는 시디로 나와 있다).
아, 정말 기가 막히구나.
이렇게 좋은 곡도 모르는 주제에 후지고 구린 곡이 어떻다니 하는 게 우스워졌다.




Posted by H군

맥스 프라임을 다시 한 번 마셔봤다.

입맛이란 간사한 것이어서 그때 다르고 이때 다른 법.

게다가 건이 오빠가 선전한다니 진짜 맛있을지도 모른다.

수현 씨, 하치 언니도 꽤 마실 만하다고 얘기했다.

한 모금, 아직 정확히 맛을 모르겠다.

두 모금, 예전 프라임이 느낌이 조금 난다.

세 모금, 라커스 형에게 이야기했다.

"먹다 남은 프라임 섞어서 파시는 거 아니에요?"

그야말로 프라임 퇴주다. 제기랄.



Posted by H군

근조

2007. 1. 8. 10:14
라커스 형 프라임 단종 포스트에 트랙백.

하이트 프라임이 단종된다고 한다. 작년 여름 맥스가 나오면서 잠시 그러한 소문이 돌았지만

지금껏 안정적으로 프라임이 공급되면서 루머로 추정됐으나 사실 맥스 발매가 애초에

프라임 단종을 예고했던 것이다.




이제 하이트 프라임이 사라지면 무얼 마시란 말인가!

대충 생각해도 근 2년 간 평균적으로 하루에 두 병씩은 꼬박꼬박 하이트 프라임을 마셔왔거늘...

하이트 프라임의 쓸쓸한 퇴장에 근조를 표한다.






Posted by H군

포부

2007. 1. 6. 01:24

구랍에 고향에 다녀오며 술잔을 나누고(겨누고) 어쩔 수 없이

새해의 다짐을 강요받고, 일정을 협박받는 상황에서

잠깐 짧은 미래를 공상해보다.

감히 예측할 수 없다라고, 암울하고 그저 뻔한 미래에 '변수'를 대입하는 척 해보지만

'상수'일 따름이란 걸 알면서도 역시 뻔한 대답은 하기 싫어 버팅겨봐도

대충 그에 준하는 답을 하고야 마는 구랍의 포부.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공상한다.

잠시의 기간 동안 나 자신이 편집자로서 그닥 능력 없음을 절감하였다치더라도

그나마 재미를 느낄 수 있고, 요령을 발휘할 수 있다면 최대 2년은 버틴다.

그리고 그후 과감히 떠난다. 그 여정을 현재 잴 필요없이.

그런 공상을 하면 설핏 미소가 생긴다.

그런 면에서 나라는 인간의 오늘은 제법 나쁘지 않다 라고 위무해본다.

아니, 대충 가름하고 비해보아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라고 한다면 어쩔 수 없어도, 나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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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시마 다케오라는 이름을 보고 '오호~'하시는 당신이라면 나와 비슷한 세대일 듯.

참으로 오랜만에 이 이름을 보게 된 것은 청소년유해간행물 목록에서.

밀리언셀러클럽에서 나온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유해간행물로 선정하여 출고됐던 책을 모두 수거하여 비닐포장 후 딱지를 붙이고

출간해야 하게 되었다. 이에  해당 출판사와 관계자, 독자들이 반발하면서

누군가 밀클 카페에 청소년유해간행물 목록을 올려놓은 것이다.

대체 이런 책들과 한국공포문학단편선이 함께 오른 게 말이 돼냐면서.

함께 분노하고자 이 목록을 열어본 것은 아니고 대체 어떤 책들이 그런 판정을 받았나 궁금해서

보다가 '도미시마 다케오'라는 이름과 조우하게 된 것.

도미시마 다케오가 누구였던가. '여인추억' 시리즈의 작가이며 '마사오'의 성적 성장담을 통해

수많은 우리 세대 수컷들의 사타구니를 묵직하게 했고 마사오에 대한 질투와 동경을 품게 만들었던 작가.

<황홀한 사춘기>가 <황홀한 간호사>, <황홀한 선생님>으로 이어지며 노골성은 짙어지면서도

그 성적 흥분감은 지리멸렬해지는 가운데, 도미시마 다케오의 작품들은 김유정의 <봄봄>에서

'나'와 점순이가 쓰러지며 '알싸한 향기'라고 표현되는 그런 문학적 향취가 있었다.

있었나? 있었다고 치자.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똑같이 사타구니를 달구는 데 있어서도

약간 격이 있었다고나 할까.

실제 도미시마 다케오는 순문학으로 시작하여(1953년 아쿠다가와상 후보) 청소년 문학으로 나갔다가

성애소설이란 장르에 본격적으로 도전, 수백년의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닛카츠의 로망포르노로도 만들어져 12편이 영화화되었다.

1980년부터 그 다음해에 이르기까지 그의 대표작들을 집대성한 <도미시마 다케오 전집>이

22권!으로 발간되었다, 98년 2월 5일 관능문학의 거장은 세상을 떠났다. 명복을.

(이상 내용은 위키피디아 참조.)














Posted by H군

한라산

2007. 1. 1. 19:51

2006년의 마지막 날, 한라산을 등산하다.

한라산을 마지막으로 등산했던 것이 아마도 98년 또는 99년 겨울.

아이젠도 없이 등산했다가 하산길에 거의 미끄럼 타듯 내려왔던 것이 기억난다.

이번에는 동생과 함께 아이젠도 챙기고 9시경부터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시도.

'육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등산로가 미어져 '종마 산행'은 거의 불가능하여 느긋하게 산을 오르다.

약 3시간 반 정도 걸려 백록담에 도착하자 가득찬 운해가 맞이한다.

이것이 A급인지 B급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구랍을 운해의 홍수와 함께하는 기분은 제법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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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컨트리하듯 달려 내려오는 길에 올라가며 놓쳤던 풍경에 잠시 눈을 돌리다.

이번 산행은 여태 등산 가장 편안한 등산이었다라고 허세 떨다가

새벽에 왼쪽 무릎이 시큰해오며 결국 무릎보호대를 차다.

그럼에도 2006년의 마지막날 그리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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